꽃을 좋아한다. 계절에 따라 자연스럽게 피는 꽃이 가장 좋지만, 12월 생일에 받는 장미 꽃다발도 7월에 보는 동백꽃 사진도 좋다. 누군가는 꽃 선물이 '예쁜 쓰레기'라던데, 나에게 꽃 선물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표현이다.
꽃을 좋아하는 건 엄마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엄마는 오랫동안 꽃꽂이를 배웠고, 덕분에 안방에는 방 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꽃 바구니가 늘 놓여 있었다. 엄마가 비좁은 거실 가득 꽃을 늘어놓고 가지를 치고 가시를 다듬는 모습은 잊히지 않는 유년기의 한 장면일 정도로, 나에게 꽃에 관한 추억은 곧 엄마에 관한 추억이었다.
지금도 주택인 친정에 가면 작은 마당 한 편에 크고 작은 화분이 여럿 놓여 있다. 대부분의 화분은 꽃모종을 심은 것들이라 때마다 다른 색을 띤다. 으레 엄마가 좋아해서 사다 놓은 거라 여겼던 그 화분들이, 대체로 할머니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시기 전,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엄마가 하나둘씩 사다 놓은 화분들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꽃을 좋아하셨던가?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몰랐다기보다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와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을 전혀 감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할머니에 대한 나의 편협한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억척스러울 만큼 생활력이 강하고, 무엇 하나 허투루 사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꽃 같은 걸 좋아할 리 없다는 막연한 편견. 그토록 오랫동안 할머니의 첫 손녀로 살아왔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할머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구나.
되짚어보니 할머니와 함께 살던 작은 집에는 언제나 꽃이 있었다. 그 꽃의 주인은 늘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가만가만 떠올려보니 그렇지 않았다. 정성껏 손질해 화려하게 꽂아놓은 수반 위의 꽃은 분명 엄마의 것이었으나, 소담한 옥상 텃밭과 1,2층을 잇는 계단 위 작은 화분에는 분명 할머니의 꽃이 그득했다. 할머니의 꽃은 온전한 꽃으로 기억되기보다 그 자리에서 맺힌 열매들로 기억되었을 뿐. 오이꽃, 고추꽃, 방울토마토 꽃과 꽃처럼 피어난 상추까지. 모두 할머니의 손끝에서 피고 맺히고 지던 것들이었다. 어린 날의 나는 할머니가 키운 채소들을 먹을 줄만 알았지, 그것들이 열매로 맺히기 전 얼마나 예쁜 꽃을 피웠는지 무심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손끝에서 살펴진 그것들은 탐스럽고 실한 모습으로 내 앞에 놓이곤 했다. 할머니가 꽃답게 쓰다듬고 매만져가며 얼마나 곱게 키운 것들이었을지.
쓰다 보니 텃밭의 꽃들로 이야기가 흘러갔지만, 할머니는 그저 꽃으로만 존재하는 것들도 분명 좋아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 외에 어떤 효용도 없는 그냥 꽃들에도 ‘이쁘다. 이쁘다.’ 연발하며 감탄하던 할머니. 억척스럽기만 했다 생각했던 할머니가 엄마의 꽃꽂이를 한 번도 반대하지 않은 것만 봐도, 엄마의 꽃꽂이에 가장 오래 눈길과 마음을 준 사람이 할머니였던 것만 봐도 할머니의 꽃 사랑은 진짜였구나 싶다. 그걸 이제야 내가 감각하게 되었을 뿐.
사실 할머니와 꽃 이야기를 써야지 마음 먹은 것은 ‘봉선화’ 때문이었다. 이번에 할머니 병문안을 갔다가 옥상 정원에 피어 있는 봉선화를 보았다. (병실에서 답답해할 할머니를 위해 엄마는 매일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정원에 꽃구경을 간다. 덕분에 우리도 꽃이 가득한 곳에서 소풍 나온 느낌으로 할머니를 뵈었다.) 봉선화를 보자마자, 기억 저편으로 완전히 잊혔던 기억 하나가 파르르 날갯짓을 한 것이다.
어린 날의 여름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기억이 있다. 매년 여름이면 할머니는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였다. 할머니가 따온 꽃잎과 이파리가 우리 집 텃밭에서 자라던 것들이었는지, 길가에 핀 것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여름 매미 소리가 맹렬하던 여름밤, 할머니는 붉고 하얀 봉선화 꽃잎을 가득 따와 작은 절구에 갈듯이 빻았다. 드르륵드르륵 탕탕. 백반도 몇 알 넣어가며, 드르륵드르륵 탕탕.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그 소리. 언제부터 할머니 곁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렸을까.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이걸 단디 짜매야 손톱에 물이 이쁘게 든다. 밤새 요거를 짜매고 자야 하는데 할 수 있겠나?”
거역할 수 없을 만큼 단호하고 분명하던 할머니의 목소리. 당연하다고, 자신 있다고 답하고는 할머니에게 열 손가락을 내밀던 어린 날의 나. 그렇게 열 개의 손톱 위에는 곱게 빻아져 검붉은 봉선화 꽃잎의 덩어리가 얹혔다. 꽃잎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천으로 싸매는 것도 모자라, 비닐까지 한 겹 더 덧대어 실로 꽁꽁 묶고 나면 꼭 열 손가락에 골무를 하나씩은 낀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게 어찌나 우스웠는지 깔깔 웃는 것도 잠시였다. 얼마나 불편했는지 금방이라도 풀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단디 짜매고 밤새 자야 이쁘게 물이 든다‘는 할머니의 엄한 목소리가 뒤엉켜 밤새 잠을 설쳤야 했다.
그런 날은 꼭 새벽부터 잠이 깼다. 예쁘게 물든 손톱을 확인하고 싶은 설렘과 밤새 손가락을 옥죄던 천을 풀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잠든 나를 그냥 두지 않았으므로.
“할머니, 이제 이거 풀어요?“
“어데, 한 번 보자. 이쁘게 잘 들었는가!”
할머니의 손톱에는 이미 짙은 주황빛 물이 들어있었다. 얼마나 짙은 빛이었던지. 할머니는 밤새 꼼짝을 안 하고 주무신 걸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는 사이, 밤새 내 손가락을 꽁꽁 싸매고 있던 천도 하나둘 풀려 나갔다. 손가락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주황빛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한여름 이글거리던 태양이 질 때, 하늘을 수놓던 유난히 짙은 노을빛 같은. 손톱 위에만 예쁘게 물이 든 할머니 손과 달리, 내 손은 손가락 한 마디가 통째로 물들어 있긴 했지만.
“할머니, 내 손은 왜 다 물들었어요?”
“자면서 이래저래 움직이니 안 그렇나. 몌칠 있으면 손톱 우에만 남고 다른 데는 다 빠진다. 걱정 마라.”
정말이었다. 일주일쯤이면 손가락에 든 물은 다 빠지고, 손톱 위에만 예쁜 주황빛이 남아있었다. 그해에는 할머니와 내 손톱이 꼭 같은 모양으로 자라났다. 손톱이 조금씩 자라고 깎이는 동안, 여름날의 기억도 조금씩 모였다 깎여 나갔다. 어느새 손톱 끝에 겨우 보일 정도로 주황빛이 남을 때면 겨울이 왔다. 마지막 남은 주황빛을 깎아낼 때쯤이면 괜히 아쉬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다 평소보다 손톱 길이가 더 길어졌던 기억도 난다. 할머니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할머니가 내 안에 뿌려준 꽃씨들이 참 많다. 그 꽃씨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빛깔로 내 안에 싹 틔우고 있는지, 이제 할머니는 다 잊고 말았다. 정말이지 모두 다 잊어버렸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잊지 않았으니까.
사는 동안,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꽃을 피우며 할머니가 내게 남긴 것들을 하나하나 추억할 테니까.
할머니가 나를 잊어도.
내가 할머니를 기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