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라 Aug 03. 2024

기꺼이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정말 나답게 사는 것

왜 기꺼이 사랑할 수 없을까?

꽤 오랜시간 마음에 남았던 질문이었다. 주변을 사랑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어려워졌다. 편지를 쓰는 것이 어려워 선물로 마음을 표시하는게 전부가 되었다. 정말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시간이 아닌 마음의 에너지를 쓸 수가 없어서였다.


왜 기꺼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터질 것 같은 표현들을 왜 꾹꾹 눌러 입속에 담아 살아야 했을까, 나만 그런걸까? 


어른이 되니, 거절이 두려웠다. 시도하지 않으면 흔한 거절도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저 현상유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나의 울타리 같이 느껴지는 날이 온것이지. 고약한 어른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그리고 나는 사랑을 주기 어려워 하는 어른이 되었다. 


사랑은 용기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 

움츠러 드는 사람은 사랑하기 어렵다. 표현을 삼키고 삼키다, 상대가 아주 멀어진 후에 '그래, 말하지 않길 잘했어.'라며 상대의 의견은 듣지도 못하고 끝날테니 말이다. 가족과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에게 사랑하다는 말을 언제나 할 기회가 있겠지, 하며 현상유지를 하다 결국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마지막을 보내고는 한다. 어른이 된 우리는 점점 더 용기가 없어지고 자주 후회하지만 끝내 용기는 내지 못했다. 


적당한 사랑은 없고, 적당한 용기는 없다. 사회에서 많은 거절을 받을수록, 우리는 평가받는 것에 민감해지고 상대를 그런 눈으로, 또는 내가 그렇게 평가받을까 두려워 많은 말들을 삼킨다. 사회에서 학습된 것을 관계로 확장하지 말자. 물러서서 무엇이 진짜일까 보다보면, 꽤 용기가 쉽게 생길지도 모른다. 그저 할 수 있는 일과 말들일테니. 



기준을 허물 때, 사랑을 하고, 숨을 쉴 수 있다. 

보통과 평균과 같은 말들에 나의 감정과 사랑의 기준을 맞추지 말자. 

그저 그런 마음이 드는지, 나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발견하기에 힘쓰자, 나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에게 먼저 솔직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심리 상담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인생에 '절대'와 같은 기준을 세울수록 삶은 부자연스러워지고 나에게도 같은 조건을 반복적으로 스스로 강요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아도 그 선언으로 인해 불편해질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만든다고 말이다. 그러니, 그 기준들로부터 벗어나라 하셨다. 


기준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지지만, 기준은 나를 불편한 삶으로 가둬버린다. 

기준을 허물 때 우리는 주변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숨을 쉬는 것은 듣고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매일 증명해야하니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약해보이며 자주 타겟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루 8시간을 넘는 시간을 감정이 없는 능력위주와 논리 위주 삶을 살다보면 일상으로 돌아와서 사랑을 말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정말이지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생각해보자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일을 한다. 그러면 기꺼이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것이 언제나 먼저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아는 것이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