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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Aug 30. 2019

22 : 다독다독

연애 에세이 : 때로는 약이되고 때로는 독이되는  잔소리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22. 다독다독      

연애 에세이 : 때로는 약이되고 때로는 독이되는 잔소리


         

 지나친 걱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부담스러워서 꼬르륵 깊은 물 속으로 숨고 싶어진다. 걱정이 많으면 간섭도 하는데, 지나친 간섭으로 신경 쓰면 믿음이 사라진 것 같아 아무 말도 없이 입 꾹 닫아버리고 싶다. 간섭이 많으면 잔소리도 하는데, 지나친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못난 아이가 되는 것 같아 질식할 것 같다. 못난 아이가 되면 한 단계씩 자신을 낮추게 되어 열등감의 새싹을 돋운다. 성장을 위해선 수많은 실패를 해봐야 당연한데, 지켜만 봐주면 좋으련만.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당연하면서도 숭고한 감정은 지나치면 독이 되기도 한다. 여자라 더 심하지 않았을까. 부모님에게 나는 언제나 아이이겠지만, 무엇이든 걱정하며 바라보는 눈빛은 결혼하니 끝을 맺었다. 엄마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걱정마. 내가 알아서 할게.’가 아닐까. 매년 새해에 엄마는 가족의 사주를 보고 오시는데, 언제쯤인가 단골 철학관 선생님이 ‘딸은 알아서 잘하니까 내버려 둬도 된다’라는 말을 듣고 왔다며 나에게 알려주셨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였다. 여러방면으로 걱정이 많은 엄마는 멈추지 않는 기관차였다. 대학교 졸업 이후로 ‘칙칙폭폭’만 안 했을 뿐 걱정은 여전히 전해졌다. 딸로서의 욕심은 그저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것, 어떤일을 하더라도 인정해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었다.     


 그를 만나고 약 6개월 동안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부모님께 하지 않았다. 연애의 자유로움이 사라질 것 같았고, 간섭할까 무서웠다. 그는 나와 다르게 부모님한테도 주변 사람들한테도 이야기했다. 나를 소개하며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로 그치지 않고 자랑도 했다. 내 그림을 보여주며 작가라면서. 나는 스스로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못했는데 그는 나를 굉장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마치 대단히 잘난 사람처럼. 

 “대단치도 않은데 뭘 그렇게 자랑해.”

 “사실이잖아.”

 내가 그림을 잘 그리니, 잘 그린다 말한 것이고, 작가니까 작가라고 말한 것이라 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면서. 그는 게임 회사를 다닌다. 회사에는 원화 작가를 했던 사람도 있고, 미술을 했던 사람도 있고, 캐릭터를 수도 없이 보는 사람들일 테다. 그는 동료들이 내 그림을 보고 대단하게 생각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림의 종류가 다르잖아’ 하고 겸손을 떨었지만, 내심 기뻤다. 그에게 받은 감사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슴 눈에서 초원이 보이는 것 같아. 빛의 느낌이 정말 좋다.”     


 내 사슴 그림을 보며 그가 한 말이다. 전시를 위해 동물 그림들을 그렸는데, 그중에 사슴이 있었다. 그의 감상평에 감탄했다. 보통 사람들은 ‘멋지다’ ‘어떻게 그린 거야?’ ‘진짜로 그린 거 맞아?’ 등등의 말이 전부였는데 그는 달랐다. 감탄할만했다. 그런 그가 내 그림으로 자랑을 하고 다닌다니 더없이 고마웠다. 거의 13년간 미술학원을 다녔을 때 이후 처음으로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크기로 다가왔는지 아마 그는 가늠하지 못하겠지. 그에게는 나와는 다른 배우고 싶은 면이 있었다. 자기 칭찬을 스스로 잘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점. 가끔 장난 같은 잘난 척을 할 때면 얄미웠지만. 보통 나의 경우엔 내 작업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했었다. 타인과 비교하며 ‘이것밖에 못 하나’라는 생각으로 자책해왔다. 이제 성인이라 나를 인도해줄 선생님도, 갈 길을 잡아줄 멘토도 없으니 나 혼자만의 싸움이었고 고군분투하며 좌절도 했었다. 어쩌면 그 와중에 그는 나에게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던 듯하다.     

 나는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참 많이도 가지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그림을 나누어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미술학원에서 칭찬 받아왔던 날 까지 그 원초적 욕구는 내가 살아오는데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사실은 그 인정, 그 누구도 아닌 부모님께 가장 듣고싶었는데 부모님은 부모이기에 나를 일하는 딸보다는 자신들이 키운 자식으로 본 시선이 더 컸던 것 같다. 지금은 감사할 만큼 표현해주시지만 예전엔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던 부모님이셨다. 우리시대와 달랐던 부모님의 시대는 가부장적이었고 생활하기 바빴고 서로 표현하며 살기보다는 걱정하며 사는 것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딸이 그린 그림에 관심을 기울인다기 보다는 딸이 미술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 해줘야 한다는 걱정과 같은. 이것이 인정받고 싶던 내가 유달리 걱정의 말을 더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지 않았을까.




인간이라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인정을 요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에게 내제된 강한 열등감은 없는지.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못난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을 부각시키고 칭찬해주세요.
당신도 참, 잘난 사람입니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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