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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Aug 28. 2019

21 : 짙은

연애 에세이 : 욕을 한 남자, 부정적 감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21. 짙은          

연애 에세이 : 욕을 한 남자, 부정적 감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씨발.”

 “뭐라고? 지금 씨발 이라고 했어?”   

  

 싸웠다. 술에 취한 그가 내가 보고 싶다며 전화했는데 싸웠다.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뒤로하고 감정만 남았다. 꼬챙이가 쑤욱 하고 들어온 듯 그 단어가 가슴 깊숙하게 꽂혔다. 나한테 내뱉어버린 단어는 아니었어도 그와 나 사이에 끼어든 단어였다. 나와 싸우다 튀어나온 단어였다. 그는 남자라면 할 수 있는 단어 아니냐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 싸우다 욕을 듣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전화해서 말했다. 욕을 했다고. 그는 미안하다며 실수했다고 한다.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황당했다.      


 그가 술 취한 날 또 싸웠다. 또 욕을 들었다. 내 귀에 약을 발라야 하나 싶었다. 술에 취했다 해도 대화하고 싶은 나는 서슴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했다. 그게 잘못이었나 보다. 평범한 대화였다 싶었는데, 하고 싶은 말 안에 그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들어있었나 보다. 그리곤 느꼈다. 아, 한없이 솔직한 사람이구나. 표현력이 괜히 많은 사람이 아니구나. 좋으면 좋다고, 화나면 화난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모든 걸 다 쏟아내는 사람이구나. 그래도 욕은 좀 아니잖아? 다음 날 아침 전화해서 말했다. 욕을 했다고. 그는 또 했냐며 미안하다 했고, 이번에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다음부턴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또 싸웠다. 또 욕을 들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술 취한 그와 통화하며 말했다. 오늘 이후, 한 번만 더 나와 싸우다 욕을 하면 나에게 차 한 대를 사달라고 했다. 처음엔 백만원을 달라고 말했다가 그걸로 되겠냐고 더 강한 걸로 하라길래 차로 변경했다. 그리고 경각심을 위해 녹음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라고 하니 실제로 녹음기를 켜고 증거를 남겼다. 그리고 일러주었다. 증거는 남았다고. 그러자 내가 밉단다. 욕을 한 그가 내가 밉다고 했다. 난 잠이나 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세 번의 욕을 한 그는 이후 나와 싸우다 욕을 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은 했다. 봐줄 정도로만.     


 듣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 욕인데 안 좋다는 것은 너무나 뻔하다. 욕을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욕은 사람을 나빠 보이게 만든다. 그 또한 표현의 한 방법이긴 하다. 그렇다고 올바른 표현법은 아니다.      

 20대 초중반의 나는 욕을 가끔 했었다. 그래야 감정도 풀 수 있고 내가 강해 보일 거라는 대단한 착각을 했었다. 오히려 성난 사람으로 보이게 했을 뿐인데. 사실은 그때도 욕은 싫어했었다. 그럼에도 강렬하게 몰려오는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몰랐었다. 그래서 타인에게 향하진 않는 나를 위한 욕을 했었다. 기분 나쁜 감정을 받았을 때 튀어나온 적이 있었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스트레스를 풀려고 툭툭 흘려댔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내가 약해 보이고 만만 해 보일까봐 쌔 보이는 척하려고 그러기도 했다. 그때 시절엔 몸 속에 암흑 덩어리가 있어 공격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생산해냈다. 욕이 아니더라도 상처 낼 수 있는 단어들을. 후에 누가 뭐라고 하든 스스로 단단하고 유연해진 사람이 되자 칼날 같은 말들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된 것. 어떤 말을 들어도 나는 나이며 내가 달라질 일이 없기에.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기에. 욕을 하지 않아도 감정을 표현할 방법은 많기에.     


 경험상 안다. 그래서 더 정확히 안다. 습관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은 반대로 약한 사람이라는 거. 마음의 중심이 없고 흔들리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이 약해 보일 것 같다는 불안 때문에 만들어진 방어 중의 하나라는 거. 마음 깊숙이 부정적 감정이 뿌리 내려져 있다는 거.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라서 제멋대로 나오는 단어라는 거. 화는 나는데, 울렁이는 분노는 주체할 수 없는데, 표출은 해야 하니까 나오는 단어라는 거. 어떻게든 폭발하듯 나오는 단어라는 거. 욕의 의미를 살펴보면 남을 비하하거나 무시하기 위함이 많다. 물론, 욕은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고 진정 필요할 때도 있다.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면 가끔 표출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욕을 많이한다면 자신의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욕은 내뱉는 순간 몸이라는 밭에서 잡초를 자라게 한다.     


 술에 취한 사람은 그냥 재우는 것이 최고라며 그는 자신이 전화해도 그냥 재우라고 충고해줬다. 그래서 그것이 욕을 하지 않기 위한 좋은 대처법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재웠다. 그가 욕을 했지만, 생활화된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감정을 토해내고 싶어 후드득 떨어트린 단어였다는 걸 안다. 내가 겪은 그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참기 힘들어 뿜어내야 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를 오해하기 보다는 이해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내 앞에 떨어진 단어로 인한 상처는 바로 아물진 않았다.

나는 한발자국 물러나 그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의 부정적 감정은 표현되지 않으면, 표출되지 않으면
차곡차곡 내면안에 쌓입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툭툭 흘러나오게 되죠
어떤사람은 별것도 아닌걸로 예민하게 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소한 일로 화를 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부정적 감정은 있습니다.
내가 평소와 다른 이상 행동을 한다면 풀어내지 못한 무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찾아보세요. 그리고 스스로 다독여주세요.
깊어지면 마음의 병이됩니다.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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