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heera Sep 06. 2019

27 : 쉼터

연애 에세이 : 명품백이 필요없게 만드는 마음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27 : 쉼터        

연애 에세이 : 명품백이 필요없게 만드는 마음


       


 차곡차곡 쌓이는 숫자들의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눈앞을 스친다. 청년들 사이에 끼어 있는 나란 사람까지 모두가 같다. 시간은 붙잡히지 않으니 우리가 쫓아가야 하고, 쫓다 못해 뒤를 돌아보면 한숨이 절로. 지친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하는 막연함 속에서 구멍 하나 발견하고 잠시 쉰다. 그래야 또 살아갈 수 있다.


 내가 피곤하고 우울할 때면 그는 나에게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하다 생각해본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말했다. 그는 그러면 곧장 그걸 해주었다. 혼자 구멍을 찾고 쉼이라는 터를 만들었을 때보다 그라는 사람이 있어 안락했다. 나 대신 먼저 구멍을 찾아주고 쉼터를 제공해준 사람. 지난 강원도 여행처럼. 삶의 선배인 그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감사한 일이었다.     


 “힘들어.”

 “뭐가 힘들어.”

 “그냥 지쳐서.”

 “음... 우리 내일 뭐 하지?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내일은 나 그냥 집에서 쉬면 안되?”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기에 주말마다 한 번씩 만났다. 나의 경우 집에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항상 밖에서 일을 보며 할 일을 찾아다녔다. 지쳐서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었다.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정말?”

 “응, 근데 보고 싶은데, 쉬면서 놀 수 있는 방법 없나.”

 “흠...오빠 집에서, 오빠 옆에서 그냥 쉬어도 좋을 거 같은데, 지하철 타고 가려면 너무 멀어.”

 “오빠가 데리러 갈까?”

 “데리러 와도 내가 화장하고 준비하고 나가야 하잖아. 귀찮아.”

 “화장을 왜 해.”

 “나가려면 준비를 해야지.”

 “이건 어때. 오빠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데리러 갈게. 너는 잠잤다가 일어난 상태 그대로 오빠랑 같이 가는 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 와서 바로 다시 자. 어때?”

 “괜찮은데? 몇 시에 올 건데?”

 “6시까지 갈까?”

 “일어날 수 있어? 괜찮겠어?”

 “응. 어서 자자.”

 “그래 알았어, 내일 봐.”     


 그가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다. 설레임이었을까. 설레발이었을까. 일찍 잠에서 깨어 핸드폰을 봤다. 아직 그가 출발할 시간이 안 되었다. 얼마 지나자 출발한다는 문자가 한 통.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머리도 감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고, 옷만 대충 갈아입은 채 모자를 눌러쓰고, 집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대로 곧장 분당으로 향했다.     


 어찌나 즐거웠던지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 있었다. 색다른 여행을 하는 듯했다. 분당에 도착해 근처 설렁탕집으로 갔다. 배고픈 배를 채워 주기 위해 설렁탕 두 그릇을 시켰다. 두 그릇 앞에서 내 민낯을 두고 장난을 친다. 설렁탕이나 먹지. 민망함에 그만 쳐다보라며 고개를 돌렸다. 빈 그릇을 남겨두고 일어나 그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우리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고 일어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누워서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거나 음식을 시켜 먹었다. 그리고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왔던 그대로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마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마음. 충분했다. 충만했다. 사소한 것 일지라도 물든 마음이 퍼지면 더 진하게 남는다.     



익숙함에 취하면 소중한 것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연인이 해주는 사소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커다란 선물보다 사소하게 챙겨주고 사소하게 마음 써주는 하나하나가 모이면
그보다 더 큰 감사함은 없을거에요.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서평 보기                



작가의 이전글 26 : 새벽 달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