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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Sep 09. 2019

29 : 고백

연애 에세이 :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29 : 고백           

연애 에세이 :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


    

 몇 살이니, 무슨 일 하니, 대학교는 어디야, 부모님은 뭐하시니, 두 분 다 살아계시니, 같이 살고 있니, 집은 어디야. 그래? 헤어져. 뭐라구요? 아니, 왜? 결혼할 사람도 아니고, 만난지 2달밖에 안 된 사람인데. 원래 잘 알리지 않던 소식을 전했을 뿐인데.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처음으로 직접 말해본 건데, 결론은 헤어지라는 답을 받았었다. 29살에 만난 사람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저녁 아홉시 쯤 엄마와 아빠, 나, 셋이서 집 앞 근처 맥주 가게에서 치맥을 하고 있었다. 소식을 전하자, 엄마가 취조 아닌 취조를 했다. 자식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이라지만, 심했다. 마음 굳건히 먹었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다시는 말하지 말아야지. 친오빠한테는 말했다. 친오빠는 이해해줬다. 남자가 보는 남자가 정확하다고, 오빠에겐 일부러 소개도 해줬다.     


 아빠는 몰라도 엄마는 눈치 백 단. 친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남자친구 있는걸 밝히라고 했다. 오빠가 도와주겠다며. 오빠가 진짜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반신반의함으로 망설였다. 그와 만난지 6개월째. 다음 주에 말할게 해놓고 1달간을 더 지체했다. 다시 연락이 왔다. 언제 말할 거냐고 묻는. 엄마가 눈치를 채서 자꾸 재희가 남자친구가 있는 것 같은데 맞냐며 물어본다고. 중간에서 오빠가 더 괴롭다고.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오빠가 너 내버려 두라고 말해주겠다고 했다. 캐묻지 말라고 말해주겠다고. 많이 늦지만 않으면 뭐라고 하지 말라고 해주겠다고. 결국, 오빠의 성화에 못 이겨 결심했다. 오빠를 믿어보기로 했다.     


 어라? 엄마가 나이만 물어보고 다른 건 안 묻는다. 어라? 오빠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대단한데? 밥 먹다 엄마에게 슬쩍 말했다. ‘남자친구, 있어’ 엄마는 시큰둥한 척 연기했다. 몇 일 지나자 엄마가 슬쩍 물었다. 직업이 뭐야? 다음에 또 슬쩍 물었다. 엄마는 살며시 슬쩍슬쩍 물어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엄마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물어 봐주는 그런 엄마가 귀엽게 느껴졌다. 고맙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나름 잘 대답해줬다. 나도 궁금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가장 집에 많이 있는 엄마가 모를 수가 없겠다만, 알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엄마는 우리 빌라 총무여서 빌라 건물 벽에 붙어있는 cctv를 확인할 수가 있다. 거기서 자꾸 못 보던 차가 왔다가 금방 가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밤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남자 목소리인 것 같았다고 했다. 앗, 스피커폰으로 통화하지 말걸. 아마 엄마는 나와의 대화를 아빠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말할 것이다. 상상되니 웃음이 났다.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지 엄마와 아빠한테 무슨 말을 들을지 몰랐다. 한번 보자고 하면 어쩌지?     


 그와의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였다. 집에는 조금 더 일찍 들어갔다. 그도 이제 부모님이 아셨으니 더 늦을 수는 없다고 했다. 늦을 때면 엄마가 남자친구가 데려다 줬냐며 물어 나는 항상 데려다준다고 말해줬다. 안심하는 듯했다. 엄마는 내가 데이트 나갈 때면 이쁘게 나가라며 내 옷을 점검하듯 봤고, 가끔은 뭐 그렇게 입냐며 핀잔을 주었다. 나보다 엄마가 더 신경 썼다.     


 여름내 휴가를 가지 못했던 그와 나는 가을이 되어서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제주도 여행 계획을 짰다. 그런데 부모님이 걸렸다. 이제는 진퇴양난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부모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두 분 다 차분하게 받아들이셨지만, 숟가락을 내리고 올려다본 아빠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냥 지나가나 싶었는데 다음번 식사자리에서 말이 나왔다. 제주도 가기 전에 남자친구를 보자며 아빠는 어떤 놈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너와 여행을 보내냐고 했다. 내가 반기를 들자. 아빠는 제주도 여행가기 전날이라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인사시키고 가라고 했다. 여행은 허락했지만, 조건이 붙었다. 갑작스러운 집 방문보다 날 잡고 밖에서 인사시키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었다. 나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었고, 우리 부모님을 알기에 마음이 안절부절했다. 결혼하라는 거 아니야? 이때 까지만 해도 결혼 생각이 없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믿음은 어렵지만 중요하다. 어렵지만 해야 한다. 자식의 입장에서 믿음이란, 부정의 단어보다 긍정의 단어로 응원해주는 것. 객관적으로 바라봐주는 것, 넘어져도 기다려 주는 것, 지켜봐 주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렵겠지. 자식을 낳아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데, 나도 자식을 낳으면 이해될까. 아직 자식은 없지만, 결혼하고 알게 되었다. 걱정하는 이유도 캐물은 이유도 혼내는 이유도 잔소리하는 이유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속엔 걱정으로 포장된 고귀한 마음이 있었다. 오빠가 말해줬다. 결혼은 어른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고, 결혼하면 한층 더 성숙해진다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는 어린애라고. 이제 그 말 이해했다.





아직도 등떠밀듯 결혼하라고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힘듭니다.
스스로의 선택이니까요. 자식에게도 선택할 권리,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죠.
결혼을 하든 안하든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성숙해진다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사는 세상은 사회생활 보다 더 다이나믹 하더군요.
공감이란 같은 것을 경험해 보아야 가능한 것인데 저도 결혼을 하니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부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으로 가는 길 아직도 참, 어렵습니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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