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가 영상을 둘러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날도 다름없이 동영상 사이트에 뜬 영상 하나를 클릭했을 뿐이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프로그램이었는데, 연예인 한 명이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신경을 쓸 여력은 없어서 영상을 건너뛰려던 참이었다.
'ADHD'
영상 하단에 뜬 자막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 연예인은 성인 ADHD를 방금 '선고받은' 것이다. 요즘은 SNS에서도 성인 ADHD에 대한 이야기나 이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보이곤 했는데,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해 쉽게 넘기고는 했다. 호기심에 해 본 성인 ADHD 체크리스트에서 체크되는 이야기도 몇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우울증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참이었다.
그러나 내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그 연예인이 하는 말에 담긴 자신의 증상, 행동, 심지어 겪고 있는 고충까지 전부 나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는 사람이 하나하나 다 다르다는데 이렇게까지 똑같을 수가 있나? 설마 하는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검색창에 '성인 ADHD'를 입력했다.
그리고 곧 나는 겁에 질린 얼굴로 엄마께 말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나 정신과 좀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 어떤 이가 자신에게 선천적인 질병이 있었음을 쉬이 짐작하고 인정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그리 큰 굴곡 없이 잘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내 복잡한 머릿속과는 대조적으로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요즘 그 영상 때문에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아지셨어요."
역시 정신병도 유행을 탄다는 건가.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에선 의사 선생님이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계실 뿐이었다. 마치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아닐 것이라 말씀하시는 듯했다.
'별 것 아닐 것이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제발 나의 기우이길 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만 말하면 나의 짐작은 정답이었다. 이번에도 10명 중에서 8등은 거뜬히 차지할 정도로 중증이었다. 어쩌면 우울증 약이 원하는 만큼 기능하지 않은 것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새 인터넷 검색으로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이 많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째서 내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 걸까.
내가 의사 선생님께 내놓은 증상은 이것이었다.
첫째, 나는 언제나 일을 미루지만 충동적이다.
둘째, 나는 기억력이 유독 좋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사람의 얼굴을 외우는 것일 정도로.
셋째, 집중력과 주의력이 심하게 좋지 않아 단순작업은커녕 가만히 앉아 책 한 줄 읽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늘 이것저것 할 일을 찍어 먹듯 수행하다 끝을 내기 힘들어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정리를 안 한 적이 없음에도 언제나 방의 상태는 한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심지어 가만히 있어 본 적이 없기까지.
나열하다 보니 이 모든 것은 내가 단순 성향이라 여길 정도로 어릴 적부터 지속되어 오던 것이었다... 신이시여.
ADHD임을 확인받고 나니 내 모든 것에 열쇠가 맞물리듯 설명이 되기 시작했다.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주제에 문어 다리처럼 다양한 취미를 가져댔던 이유, 살아오면서 성취감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유, 집중력이 극도로 짧은 대신 그 수준이 높았던 이유, 언제나 산만하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시야에 들었던 이유... 모든 게 다 ADHD의 증상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나의 집중력이 지속되는 시간이 극도로 짧음에도 그 질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그리 큰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셨다고 한다. 측정해 주시는 분마저 '이 친구는 천재 타입이에요. 남들이 앉아서 3시간 동안 공부할 때 이 친구는 30분의 벼락치기로도 같은 수준을 보일 겁니다!'라고 칭찬을 하셨다고 했다.
실제로 조용한 ADHD를 가진 성인들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지능으로 어떻게든 메꾸고선 일상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천재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천재의 수준이 다른 정상인의 평균 정도라는 것이 문제지만.
사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다행이라 말하고 있었다. 저번 우울증 사건과 마찬가지로 내 행동에 대한 이유가 부여된 셈이니 말이다. 그래도 나 스스로 예상하고 각오했던 것과는 별개로 타인에게 실제로 병을 '선고'받는 것은 천지차이라서, 병원을 나오고 나서도 멍하니 하늘만을 쳐다봤다. 안 그래도 우울증 때문에 고생 중인데, 여기에 또 무언가가 첨가된다니. 심지어 선천적인 녀석으로!
ADHD는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떤 요인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부모님의 성향을 면밀히 분석하기까지 했다. 이건 우리 아빠인 것 같은데. 뭐? 이건 우리 엄마...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비참함 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성격이자 기질이라고 여겼던 것이 전부 병의 증상일 뿐이고, 약을 먹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니 나 스스로가 병의 숙주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연신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날 이루는 것 중에 ADHD가 아닌 게 뭘까. 심지어 ADHD인은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통계까지 찾아내버렸다. 결국 무릎을 꿇는 것은 예술 분야를 전공 중인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