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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류 Jan 05. 2024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고민보다는 GO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내가 감히 ‘인생책’이라 부르고 있는, 아주 좋아하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나는 이 책에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책이 말하는 바를 지키겠답시고 무작정 아무 일에나 뛰어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를테면 종교 권유를 위한 밑밥 활동을 기회라 착각하고 걸려든다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는 것이, 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아무 데에나 연루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텐데. 지금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자중하고 있는 편이다. 간혹 내가 알지 못하는 수렁을 향해 눈을 빛낼 때도 있지만, 이럴 때에는 주위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조언을 얻으려 하는 편이다. 그렇게 나는 무작정 ‘가보자고’를 외치는 사람이 아닌, 신중하게 돌다리를 두들겨보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 다 있다는 곳에 갔다. 수면양말이 오래되어 다 낡고 해진 탓에 새로운 것을 장만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로 추위가 계속되어 새로 장만한 수면양말을 제법 애용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 있다는 곳에서 신제품 알림을 받았다. 그 제품은 수면양말이었는데, 이미 수면양말을 가지고 있는데도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에 쏙 드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면양말을 장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수면양말을 구경하러 갔다. 물론 사지는 않았다. 몇 번이고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기를 반복했을 뿐이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내 뒤를 지나쳐갔는지 모르겠다.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빼기를 여러 번, 결국 나는 빈 손으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내 발은 두 쌍이 아니고, 이미 나에게는 새 수면양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는 멀지 않아 찾아왔다. 엄마가 발이 시리시다길래 내 수면양말을 잠시 내어드렸는데, 수면양말을 장만할까 고민하시는 것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는 엄마께 내 수면양말을 넘겨드렸다. 그렇게 내 수면양말에 빈자리가 생겼다. 내가 계속 눈독을 들였던 그 녀석을 데려올 정당한 명분이 생긴 것이다. 나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다시 다 있는 가게로 달려갔다.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엄마께 수면양말을 넘긴 것이 밤이고,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바로 가게로 달려갔으니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했는지 전해지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적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판대에 그 수면양말이 없는 것이다. 같은 가게에서 다른 점원 분에게 물어보기를 수 차례, 결국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 수면양말은 가게에 없었다. 믿을 수가 없어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았다. 오프라인에서 살 수 없다면 온라인에서라도 장만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이게 웬 걸, 내가 이미 수면양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핑계로 지갑을 봉하고 있을 때에 이미 한 번 수면양말의 바람이 분 것이다. 그 중심에는 내가 갖고 싶어 하던 수면양말이 있었고, 결국 나는 그 수면양말의 기능과 외관에 대해 칭찬하는 블로그 글들을 전전하다 진한 패배감을 맛보며 검색 창을 닫아야만 했다. 수면양말을 접하는 것은 누구보다 빨랐지만, 그래서 무엇 하나. 나는 한 발 늦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놈의 시린 발에 의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싶어 다른 지점에도 들러 보았다. 그러나 수면양말의 바람은 거셌는지, 그곳에도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다시 한번 절망을 느끼며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이번만큼은 다른 무언가로도 이 허한 마음을 채우지 못했다.

이 글을 쓰고, 올리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 수면양말을 얻지 못했고, 얻을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느라 앓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상사병이 이런 느낌일까. 나는 그리하여 내 인생 책의 구절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지혜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기회는 돌다리를 두들기는 사이에 자취를 감춰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고민만 하는 것보다는 가는 것이 낫다. 나는 이것이 쇼핑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살까 말까 할 때에는 사지 않는 것이 공식이라는데, 이렇게 나처럼 상사병에 준할 정도로 앓을 바에야... 나는 지름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 사라고 등을 떠밀어주고 싶다. 분명 그것이 정신건강에도 훨씬 이로울 것이다.

나는 아마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시금 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폭주하는 나날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이미 놓치는 것의 아픔을 알았으니, 다시는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토대로 한 폭주일 것이다. 뭐든 과유불급이라지만 부족해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과했다고 후회하는 것이 나에게는 심적으로는 더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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