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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 May 26. 2024

가성비 호화생활을 위하여

최고의 사치는 나를 위한 고민

자취를 시작한다는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들은 걱정은 "자취하면 돈 많이 들지 않아?" 였다. 집세, 관리비, 식비, 그외 등등 다양한 고정지출을 생각해보니, 그 걱정이 무슨 이야기인지는 굳이 독립을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머지 않은 시기에 독립하고 싶다는 소망을 몇 년 동안 품고 있었지만, 정작 독립을 결정하고 나니 부족한 형편에 일상 속에서 아쉬운 선택을 하게 될까봐 걱정한 건 사실이었다.


막상 나와보니 호화생활이 따로 없다. 호화로움을 꿈꿀 만큼 벌어서는 아니다. 아침에 갈 곳이 있고 정해진 날이면 월급이 나오는 일상이 소원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회사 근처에 살며 해가 떠 있을 때 정시 퇴근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조금만 발품을 팔면 되는 일상. 주말 오후 햇볕 쨍한 동네 공원이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저녁 산책길을 걷는 순간만큼은 극락에 온 것 같다.



월급 통장의 자동이체 리스트를 살펴본다. 대출이자, 적금, 청약, 월세, 용돈. 월급이 들어온 다음 날이면 전날 들어온 x,xxx,xxx원이 저 다섯 곳으로 갈라진다. 신용카드에 걸어둔 자동이체도 몇 개 있다. 관리비, 가스비, 통신비. 이제 곧 신용카드 발급 이래 첫 번째 결제일이 돌아오는데 그날 출금 알림이 오면 얼마나 놀랄지 좀 기대된다. 통신비 승인내역이 뜻밖에 큰 액수가 나온 걸 보고 놀랐다가, 그 액수가 인터넷, 휴대폰, 인터넷 설치비를 모두 합친 액수라는 걸 확인하고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린 쫄보라.


흔히 말하는 통장 쪼개기는 하지만, 일단 쪼개진 돈은 자유롭게 쓰는 편이다. 통장에 넣는 돈의 액수는 제한하지만, 이미 들어온 돈을 아끼려고 아등바등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돈을 버니까 소비를 해야지 하는 심리도 없지는 않은데, 돈을 아끼는 데에 그 정도로 머리를 쓰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더 크다.



이 생활이 주는 최고의 호화로움은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여유와, 전과 다른 삶을 살며 앞으로의 삶을 결정하는 기준에 대해 내 입장을 세워볼 수 있게 해준 기회다. 본가 기준으로 통근 불가인 머나먼 동네에 면접을 보러 다니고, 증빙서류 16장을 들고 은행에 찾아가 대출 신청서를 쓴 게 전부 이 호화로움을 위해서였다.


원래 장기 계획 세우는 걸 정말 못한다. 잘 알지 못하는 미래를 상상하려고 하면, 잘 몰라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순간부터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지금의 생활은 고정 소득과 루틴을 바탕으로, 나에게 혼자 사는 월급쟁이로서의 삶이 어떤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당분간은 돈을 벌며 혼자 살 것 같으니까, 지금 느끼는 것들을 근거 삼아 앞으로 어떻게 살 지를 결정하면 될 것 같다.


결론 내리고 싶은 질문을 몇 개 적어본다. 어떤 직무를 어떤 조직에서 하면 좋을까. 그리고 어디서 살면 행복할까. 이외에도 많은 것을 결정해야겠지만,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건 언제나 행복한 고민이다.


이 틈새를 위해 내일도 열심히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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