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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 Jan 07. 2018

도피성 독서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합니다.

 언제였을까? 내가 하는 책 읽기가 결국에 '도피'라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 말이다. 확실히 나는 도피성의 독서를 하고 있었다.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은 날이면 어김없이 책을 찾아들었고, 무언가를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무언가를 한 기분'을 얻었으니 말이다. 기억을 거슬러 보자면 우연히 한 티브이 쇼 프로그램에서 독서에 대한 대화를 엿들은 적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요 책에서 절대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생각해요. 사실 책에서 얻는 지식을 바탕으로 각자마다의 생각을 해야 하는 건데 말이죠.' 그때 나온 한 패널이 한 이 말에 순간 뜨끔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 역시나 독서를 어떠한 진리인 양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의 아니게 들키고 나니, 평소 내가 가진 독서습관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 그때 처음 '도피성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독서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점에 대해선 그 이후 늘 경계한다. 내 생각을 덧붙이는 시간들이 생겼고 덕분에 독서를 하는 시간들이 점차 늘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독서가 내게 주는 것이 단순히 지식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독서를 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오는 '안도'가 '진리'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책으로 하여금 누군가의 얘기를, 누군가가 아주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들을 만난다. 물론 독서 말고도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영화로, 드라마로, 쇼프로로, 오디오로 표현되는 무수히 많은 정보들은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이야기가 되어 스며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나는 '독서'를 통한 도피를 하고 있는 걸까? 결국 다른 매체와 달리 '독서'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우리 모두는 시간을 쪼개어 살아간다. 당장에도 시간에 맞닥쳐할 일이 너무 많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샤워를 해야 하며, 당일 날씨에 어울리는 착장도 고민해야 한다. 직장까지 지하철도 잘 갈아타야 하며, 여유가 되면 커피도 마셔 줘야 한다. 결국 매 시간에 우리는 '해야만 하는 일'들에 쫓긴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 때 가장 '효율적인 만족'을 얻는다. 독서는 이러한 효율의 지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는 행위로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된다. 무엇보다 지식을 얻었다는 만족보다 시간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른 매체들이 가진 폭력성(영화관에 가는 순간 우리는 의무적으로 100분 이상의 시간 동안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폭력이 아니고서야 무엇이라 표현하겠는가?)과는 달리 독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책갈피를 가진 독자는 그 순간을 멈출 수 있다. 고로 독서를 하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내가 어떠한 선택을 행할 수 있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된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결국은 나를 위한 시간을 독서라를 행위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것이야 말로 내가 하루의 얼마라도 독서를 하기 위해 짧은 시간을 내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책을 고르는 시간' 또한 도피성 독서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돈을 벌기 위해 아주 많은 활자를 읽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그 바쁜 순간, 잠시 나는 휴식 시간에 왠지 모르게 또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그것이야 말로 앞서 말한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음의 나만의 증명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수많은 텍스트와 정보들 속에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신만의' 텍스트를 필요로 한다. 그 텍스트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결국 도피성 독서가 필요함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그것은 경험한 자들만이 알 수 있다. 독서를 하는 순간만큼 나는 오롯이 내 시간을 얻는 것이라고 말이다.


 휴일인 오늘, 감기로 집에 갇혀 있으며 겨울에 꼭 다시 읽으리라 벼루던 소설 <설국>을 완독 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만족은 다름이 아니었다. 지난 나와 비슷한 열 오름을 경험한 소설 속 주인공을 바라보던 그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증명하고 있다고. 2017년 1월의 순간을 내 '도피성의 독서'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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