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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Jul 16. 2018

인도 여행기: 이방인이 되는 용기

인도 북부 우트라칸드 주 리쉬케시라는 지역이다. 어쩌다 보니 여기가 인도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었고 이제 델리로 떠난다. 아쉬운 마음에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래봐야 작은 동네에서 늘상 오가는 길들이다. 마지막 날인줄 어찌 알고 사진을 찍자고 달라드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사진 찍기는 관광객이 많은 동네에서 내가 소비되는 방식이다. 한가지 변화라면 사진 찍기를 거부하거나 행여 소매치기 당할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는 점 정도. 이방인에 그리 호된 동네는 아니라는걸 떠날 때가 되니 알겠다.


이 동네에만 2주다. 그 사이 구면이 생겼고 오다가다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주로는 내가 물건을 구매한 상점 주인들이다.^^;;;;; 하나같이 달변가고 내용은 거진 심오한 뻘소리다. 그럼에도 만나면 그렇게 반갑다.


이번 여행 내내 문을 열고 나가는 행위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안전한 숙소 방문을 열고 나가는 건 단순히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 그 이상의 행위로 매번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니 한국 땅에 이주해 오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혹은 난민 신청자의 용기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의 것일 수 있겠다.


심장은 설레여서 빠르게 뛰기 보단 긴장되서 떨리는 경우가 많아 본의 아니게 쉼호흡을 자주 했다. 역설적이게도 낯섬을 찾아 떠난 곳에서 익숙함을 갈구하며 반복적인 일상을 만드는데 많은 에너지를 할애했다. 매일 아쉬람에 들러 요가를 하고, 단골밥집이나 과일 가게를 만들어 자주 보는 얼굴을 만들고, 그 곳에서 짧으나마 일상을 나누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자주 먹었다. 이런 노력은 얼마간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고 노력의 성과라면 어제 보이지 않던게 오늘은 보이는, 하루가 다르게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 정도다. 어제는 밤 하늘의 달씩이나 보면서 아름답다 감탄해마지 않았다. 그전에는 어둠이 내려도 달이 보이지 않더란 말이다.


한편 친절을 베풀고 또 다시 친절함을 맛보는 행위는 또 하나의 즐거운 경험이었다. 열흘간 요가와 명상을 겸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앞 뒤 옆 할 것 없이 눈이 마주치는 사람에게 두 손 모아 나마스떼 하며 눈 인사를 할 때였다. 타인에게 건네는 그 자애로운 미소란 참으로 평온한 것이었다. 내가 이토록 사람들의 친절을 갈구하는 줄 몰랐다. 아니 그보다도 내가 그토록 친절한 사람인줄 몰랐다는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풍요롭게 혹은 의미를 더하는 건 정말이지 그 작은 미소와 작은 관심, 별 것 아닌 일에 작은 찬사를 보내는 일 같은 거였다. 역시나 친절은 일방적이지 않고 교환되어야 한다.


오늘 짬을 내 구면인 사람과 동물을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과일 파는 노점상, 단골 식당, 스카프 가게, 악세사리 가게, 그림 가게, 잘 가던 카페 고양이 등등이다. 하나같이 따뜻하게 웃어줬고 행운을 빌어줬다. 그리고 그이들의 삶을 생각한다. 매일같이 들고 나는 여행객의 짧은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 말이다. 난 자리가 큰 법인데 허전하진 않을지가 걱정이다. 오지랖이 과하다.


오늘 단골 식당 사장은 마지막 날이라며 손수 만든 디저트를 내어줬다. 이 동네서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며 깨알 자랑이다. 맛은 자랑할 법 했다. 어찌나 말이 많은 친구인지 제발 밥 먹을때만이라도 조용해주길 바랬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는 델리 출신으로 인도 사회에 꽤나 불만을 품은 젊은 사업가다. 연고도 없는 리쉬케시에 와서 이만큼 성공했다는데 엄청 고무되어 있어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의 성공철학을 늘어놨는데, 정말이지 못참겠다 싶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는 누군가를 돕는게 좋아서 식당을 하면서 봉사(service) 하는게 즐겁다고 했다. 그는 심성이 어질고 오지랖이 넓었다. 비성수기인 까닭에 손님이 뜸해 일상이 따분하던 그에게 나는 틀림없이 좋은 말 친구였으리라. 어쩌면 그가 유독 내게 말이 많았던건 그저 내 작은 친절과 칭찬이 과한 탓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헤어짐은 늘 그렇듯 서먹하다. 그 사이가 막역할 수록 그랬던거 같은데, 그와는 이 동네에서 가장 막역한 사이여서였는지 작별인사도 가히 어색했다. 내년에 또 오라는 인사치레를 진심으로 받고 그를 놀래켜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지만 인도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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