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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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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Jul 21. 2018

이번 생은 됐다 고마

번뇌의 고리를 끊기 위하여

2017년 오랫동안 일했던 인권단체를 떠나오며 느꼈던 감정의 격정 속에 작성한 글입니다.



본가에 있는 동안, 잘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손톱이 자라는 속도가 어지간히 빠르다. 잠도 많이 잤다. 늘 그랬다. 집은 나를 잠들게 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잔소리 때문이다. 주로 경제적 자립이 화두다. 문제의식에 통감하는 바다. 부모 입장에서 나는 경제관념은 물론 앞으로의 삶의 전망이 그야말로 불투명한 인간이다. 부친은 아직 정정하지만 당신 사후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지가 대단한 걱정거리다. 그냥 하는 소리, 화를 내기 위한 핑곗거리가 아니다. 아득한 미래가 아닌 가장 큰 현실적인 걱정이다. 부친의 "낼모레가 마흔인데"라는 말은 라임이 되었고 나는 그 말에 경기를 할 정도다.


모친도 마찬가지다. 1일 1 커피도 내게는 과한 소비라고 할 정도로 내 경제적 능력에 신뢰가 없다. 그래서 부산에 내려온 뒤 보란 듯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모친은 크게 격려했다. 모친은 어렵사리 결단하고 단체를 나왔으니 이제는 "제대로" 된 직장을 찾길 바란다. 그런 바람은 어떤 의미에서 조금 턱없다. 나는 새파란 젊은이도 아니고 냉정하게 말해 새로운 분야로 진입하기 위한 상징 자본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분야로 진입할 의사도 없다. 그럼에도 경제적 자립이라는 화두가 나의 발목을 분명히 잡는다. 아니 부모의 우려를 모른 척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굴레가 된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한없는 후회와 원망이 나를 집어삼킨다. 한 조직에서 8년이라는 시간과 쫓겨나듯 그 단체 문을 나서는 과정에서 내가 자산 삼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나는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했나. 안온한 자리에 평생 동안 대표라는 명함으로 살아온 작자들이 뱉어온 그 비참하고 겁 없는 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귓가를 맴돈다. 그 말들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버틴 시간에 미안해 고개 숙일 정도다. 그리고 여러 얼굴들을 만난다. 고마운 사람들보다 서운한 사람들 얼굴이 자주 나타나 너무 괴롭다. 내 속좁음이 부끄럽지만 선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는 말을 실감 나게 해 준 그이들에 사과하고 싶지는 않다. 과거 이토록 삶에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가, 그동안 택도 없이 교만하게 살았나 싶다가. 그러다 솜털(아직 솜털이 있을까만)이 다 설만큼 화가 난다. 우려했던 대로 화병은 단체를 나온 이후에 찾아오나 보다. 왜 나와 내 동료들이 그런 대우를 받았어야 했는지. 나는 왜 그토록 그 단체를 붙들고 있었는지. 더 높이 올라갈 데도 없는 명망가들 명예 높이는데 동원된 줄도 모르고 그 사람들 말마따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세월 다 보낸 건 아닌지.


추석 당일 아침, 부친과의 큰 싸움도 필연적이었다. 생계에 대한 대책이 없어 보이는 나에 대해 부친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던 차, 여전히 가부장을 수행하는 부친의 모습이 아니꼬운 내가 충돌한 게다. 결국 부친은 여행을 떠났고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성격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필히 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당신이 소리 질러 미안하다 하며 좀 이해해달라고 부탁했고 나더러 이제 당신을 "그만 밟으라"라고 했다. 강릉이라고 했으니 참 멀리도 갔다. 나도 여행을 좀 다녀와야 할래나보다. 여행지는 이미 정했다. 인도로 간다. 이번 생은 이미 글렀으니 다음 생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 그리고 다시 네팔로 간다. 그곳에서 번뇌의 고리를 끊고 돌아오리라.


2017.10.7


#이번생은됐다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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