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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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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Aug 06. 2018

날이 참 눈물나게 덥다

생일을 앞두고

내가 이렇게 더운 때 태어났다. 곧 생일인데, 모친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주식 투자를 했는데 하루가 무섭게 떨어지는 모양이다. 큰 부부 싸움으로 번질 것을 간이 작은 노년의 부부는 싸우기보다는 더 큰 손해를 입기 전에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주식을 팔기로 결정을 한 듯하다. 동생은 학업을 마치고 그 돈 자기가 갚아주마 큰 소리를 쳤다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어 입꾹 닫고 앞으로 열심히 저축해서 엄마한테 손 벌리는 일 없게 하겠다 선언했다. 모친은 개미 목소리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비) 웃는다. 결혼을 하던지 제대로 된 직장으로 들어가던지 둘 중에 하나라도 해서 당신 기분을 좋게 해달라는 요구에 왜 돈 날리고 나한테 분풀이냐 언성을 높였다.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도리어 역정을 내는 건 참 못된 버릇이다.

이 한 여름 모친은 나를 낳고 절절 끓는 슬레이트 지붕 아래 연일 연탄불 때고 행여나 몸에 바람 들까 선풍기도 안 틀고 아빠는 그 곁에서 밤새 부채를 부쳐댔다지. 갓난아기가 온몸에 땀띠가 생겨 병원 신세를 졌다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많이 들어 남 얘기처럼 들리기까지. 어찌 그리 무식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자고 하는 모친의 이야기가 웃기지 않고 가슴에 콕 박히는 이야기. 고작 이십 대 중반을 갓 넘기고 신혼 생활도 없이 임신해 쥐꼬리만 한 교사 초봉으로 공부를 시작한 남편 뒷바라지를 하였으니. 무던히도 살았다.

모친이 내 나이를 계산하더니 세월이 무상하다 하시네. 당신 딸이 너무 순하고 착할 줄만 알았는데 교회도 안 나가고 잘난 척만 한단다. 내 참 눈물이 난다. 미역국은 챙겨 먹으라기에 당신이나 미역국 드시라 했더니 날이 더워 건너뛰겠다 하시네. 전화를 끊고 얼마지 않아 모친으로부터 문자가 날아들었다. '생일을 겁나게 축하해뿌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리고 예쁜 울 딸이 지금은 너무 변해서 마음이 허전하요. 남에게 일상인게 우리에게 희망사항이라 슬퍼' 연이어 정정 메세지가 도착했다. '이건 아니다. 생일 축하한담서 내 신세 타령이나 하구 미안. 정윤과 남친한테 얻어먹구. 돈 좀 보냈으니 생활비에 보태쓰세요.'라고.


날이 참 눈물 나게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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