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딸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랑관장 May 18. 2022

엄마의 비밀

세 모녀가 여행 중입니다

엄마, 엄마는 어디에 묻히고 싶어? 엄마가 답하기도 전에 “엄마는 (외) 할아버지 선산에 묻히는 거야?”하니 얼토당토않는다는 듯 “선산은 무슨, 삼촌들 누울 자리도 모자랄 판에, 출가외인인 내 자리가 있겠냐” 한다. 나도 대수롭지 않게 “그럼 어떻게 하면 좋아?”하니 “자식들 안 성가시게 화장해서 납골당에..”까지 듣고 나는 “수목장을 할까?” 하니 엄마는 “수목장도 좋지..” 하더니만 “근데 그것도 쉽지 않은 갑더라” 하는데 저어 멀리서 동생이 “엄마아~”하고 부른다. ‘조금만 올라가면 동네가 한눈에 보인다’는 말에 엄마는 나를 뒤로하고 쌩하니 동생을 쫓아 오른다. 나는 홀로 남아 묘지를 둘러보다 나만 좋은 경치 놓치나 싶어 묘지를 빠져나왔다.

-

엄마, 엄마는 누구 닮았어?

말했잖아. 엄마 할머니 닮았다고. 할머니가 꼭 나같이 눈꺼풀이 축 쳐져서 땀이 그 아래로 뚝뚝 떨어졌어. 그 기억이 아직도 나.

-

엄마의 할머니 그러니까 내 증조할머니는 욕심이 말도 못 하게 많고 어찌나 합리적으로 사고를 하는지, 울어대는 갓난쟁이 엄마를 당신 둘째 아들 (엄마의 작은 아버지)에게 ‘자(쟤) 덕은 (늙은) 내가 아니고 니가 볼 거니까, 좀 업어주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엄마 고등학생 시절 잠시 본가에 내려가 일나 간 부모를 대신해 병환이 깊은 할머니를 돌봤는데, 그건 주로 변을 가누지 못하게 된 할머니의 변을 치우는 일이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 나이만 한 숙변을 배설하는데 엄마는 그걸 배넷 똥이라고 불렀다. 그 냄새가 고약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는데, 왠지 설득력 있게 들렸다. 엄마의 병시중이 몇 차례 이어지고, 할머니가 엄마를 조용히 불러 “살아생전 니 덕을 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니 덕을 보고 산다..”하시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약국에 가서 먹고 죽는 약을 좀 구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엄마는 할머니를 향해 소리치던 당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발악하듯 “싫어 싫어 싫어” 하고 소리쳤다. 할머니의 꼬임 같은 간청이 계속되었는데 어느 시점이 되자, 엄마도 흔들리더란다. 할머니의 변 냄새가 너무 역했고, 생을 마감하고 싶은 할머니의 간청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의 숨이 멎었는데 서서히 굳게 식어가는 할머니를 보고 엄마는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엄마는 할머니의 임종을 목도한 최초의 목격자이자, 할머니의 연명을 매일같이 갈등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엉엉 울며 논으로 밭으로 뛰어가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면서 뇌리에는 ‘행여 내가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더라면 나는 영원히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겠다’ 싶어 소름이 사라지지 않더란다. 난생처음 듣는 엄마의 고백 같은 그 이야기가 인간적이었고, 놀라웠으며 그때 그 어린 엄마는 얼마나 자신이 무서웠을지. 할머니를 닮았다는 엄마의 큰 눈을 감싼 축 쳐진 눈꺼풀이 유난히 짠하게 느껴진 찬란한 오후였다.

-

나: 엄마, (외) 할아버지는 그때 왜 돌아가셨지? 더 사실 수는 없었을까?

엄마: 그러게. 병명을 알기 위해 더 애써볼 수도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완강하게 거부했지. 다 늙어서 과욕 부리고 싶지 않다고. 니 할아버지처럼 사는 게 재밌었던 분이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 니 아빠가 그때 그런 할아버지 모습 보고 존경스럽다더라.

동생: 아빠도 그런 타입일 듯? 만약에 아빠가 치료 안 받는다고 버티면 마취총 쏴서 치료받게 할 거임.

-

엄마 원가족은 이제 살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네 그지?

그렇지. 이제 몇 사람 없지.


*모친과 동생, 세 모녀가 여행 중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이 참 눈물나게 덥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