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내일이 없다면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동안 미친 듯이 일을 했고, 많은 성장과 기회들을 만났다. 그동안 했던 경력들을 살려 인터넷 강의를 찍었고, 코로나로 인해 막판에 취소되긴 했지만, 내 작업물을 올리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전시 제안을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한 해에 내 인생을 바꿀만한 기회들이 5번이나 찾아왔었고 난 매번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상당수가 취소되거나 잠정 중단되어 아쉽게 되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흐름과는 별개로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병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근무형태는 하이브리드(재택+출퇴근) 형태이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100% 재택근무만 하고 있다. 내가 100% 재택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집에 발이 영영 묶이기 때문이다. 일이 많은 날이면 특히나 아예 밖에 나갈 수가 없다. 눈 뜨면 출근이고 눈 감으면 퇴근인 것이다.
집에서 일하면 여유롭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가장 바쁘던 시기에는 집에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눈을 뜨면 바로 컴퓨터를 켜 앉았다. 남들이 출퇴근하는 시간에도 일을 하고, 자는 시간에도 일을 했다. 일을 하느라 끼니를 거르는 날과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일하다 한 번씩 창문을 보면 해가 지고 있거나 해가 뜨고 있었다.
내가 밥도 못 먹고 일하고 있다고 하자, 어떤 친구는 바로 택배로 냉동볶음밥을 보내줬다. 또 다른 친구는 집에 놀러 오면서 햇반 컵반을 잔뜩 사들고 왔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챙겨주는 친구들 덕분에 한동안 컵라면이 아닌 진짜 밥을 먹으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점점 집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는 오직 일과 나만 남아있는 것 같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마치 출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던 시절이 약 3개월 정도 있었는데, 그 당시 클라이언트가 매번 마감 1~2주 남았을 때 작업이 가능하냐고 연락을 해왔다. 이 안에 수정 2번도 해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수정본을 보내고 피드백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마감을 맞추기 위해 나는 주말과 밤낮없이 일해야 했다. 그런데 1~2주 안에 끝나는 프로젝트는 별로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뜻이며, 규모가 작다는 뜻은 예산이 작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밤낮, 주말 없이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일들을 함께 진행하지 않으면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렇게 내 삶은 일의 연속이었다. 일주일 7일 중에 2~3일은 밤을 샜다. 오전 6시까지 작업하다 잠들고, 오전 9시부터 클라이언트 측 연락이 올까 일어나서 기다렸다. 늦게까지 깨어있기 위해서 커피를 마셨고, 일어나서 잠들지 않기 위해서 커피를 또 마셨다. 집에 커피 원두를 대량으로 사다 놓고 진한 농도로 내려 마셨다. 카페인으로 각성이 되면 효율이 두 배 이상은 되었다.
만약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속이 쓰리거나 어지러운 때에는 술을 살짝 취할 정도까지만 마셨다. 나는 머릿속에 생각이 아주 많은 편인데, 약간 취하면 몸은 기능을 할 수 있으나 한 가지 이상 생각을 할 수가 없어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패턴이 매일 번갈아가면서 반복되었으니 몸이 정상일리가 만무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말로 '미친 것'처럼 일했다. 저렇게 살았던 지난날이 있었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은 틀림없지만, 계속 그런 삶의 방식을 지속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새벽 3시쯤에 일을 마치고 자려고 누웠을 때였다. 당시에는 5~6시에 자는 일도 많았으므로 3시면 일찍 끝난 편이었다. 보통은 너무 피곤해서 누우면 기절하듯이 잠들곤 했다. 그런데 자려고 누웠더니 갑자기 카페인으로 인한 각성 상태가 되었을 때처럼 미친 듯이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심장소리가 머리를 쿵쿵쿵쿵 울렸다. 심장박동은 계속 빨라져서 숨이 가빠질 정도였다. 소리뿐만 아니라 명치에서 심장의 움직임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과호흡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오늘 어찌어찌 잠든다 하더라도 자는 동안 심장마비로 내일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일단 내일 깨어날 수 있게만 해달라고 빌면서 내 인생을 돌아봤다. 내가 죽는다면 언제 발견될까 생각도 해봤다. 혼자 살고 있었고 매일 연락하는 사람은 대부분 클라이언트들이었기 때문에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인생이 허망했다.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결국 현실은 일만 하다가 의미 없이 죽는구나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다음날 나는 다행히 눈을 떴다. 당시 나는 주 7일 일하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우선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쉬자고 해서 주 6일제로 바꿨다. 그리고 그로부터 2개월 후에는 남들처럼 주 5일만 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전보다 수입은 더 늘었다. 마침내 나와 내 브랜드를 구분짓고, 일하는 나와 일상의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