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낭소리 Nov 13. 2019

[다낭소리] 내 생애의 아이들

 내 생애의 아이들

 여름 방학에 연 한국어 동아리는 초반의 기세와는 다르게 날이 갈수록 반응이 시들해졌다. 몇 주 지나자 학생들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게 중에는 미리 못 온다는 연락을 준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 말없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 되면 나오고, 일이 생기거나 바빠지면 다시 안 나오고…. 


 늘 반복되는 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작년에는 이 문제로 속앓이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이미 예상한 일이기도 하고 떠나는 마당에 학생들과 씨름하기 싫어서 마음을 많이 비웠다. 


 그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이즈음 내가 열심을 낼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본다. 나는 단순히 ‘아이들이 예쁘다’라는 이유만으로 봉사를 다짐하거나 활동을 이어 온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예쁠 때보다 미울 때가 더 많았고 내 뜻대로 움직여 주는 때가 드물었다. 


 임지 부임 후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그렇게나 귀엽고 순수하게 보이던 학생들에게서 다른 모습을 보았다. 충격적이었던 시험 중 커닝은 그렇다 치더라도 말 한마디 없이 수업을 재낄 때, 다 티 나는 거짓말을 하며 안 나올 때, 무엇을 지적해도 이런 저런 핑계만 댈 때 나는 무책임한 아이들에게 실망했다. 사람마다 좋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고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걸 알고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내 앞에서는 온순한 학생들이 다른 시간에 버릇없이 행동한 얘기를 들으면 이 애들도 내 품 안의 병아리가 아니라 다 큰 성인이었구나 싶어 낯설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 대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나이인데 내가 너무 어리게만 본 걸까 싶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떠듬떠듬 발표하는 친구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거나 뒤에서 쑥덕거릴 때,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누워 나를 평가하듯 쳐다볼 때는 괘씸해서 정이 똑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려 했던 것은 내가 그 애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얄밉고 속상한 건 순간이어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기에, 내게 사랑은 감정 표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수고를 감내하는 것이었으므로. 아이들이 어떠하든 간에 이 자기 중심적인 마음이 있어 품고 나아올 수 있었다.


 사랑은 감정과 의지로 유지된다고 한다. 때로는 의지가 더 필요할 때가 있는데 나에게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그랬다. 책을 읽다 공감되는 구절이 있어 표시해 두었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이 되고, 그것이 가치가 있을 때 우리는 거기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그것을 즐기며 보호하게 된다. 자신의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춘기의 청소년은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차를 닦고 광을 내며 이것저것 손볼 것이다. 정원 가꾸는 일을 사랑하는 노인도 그의 시간 대부분을 꽃을 다듬고 거름을 주며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M.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내가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쏟았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럼 가르치는 일은 재미있지만 내 생의 아이들은 여기까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풀릴지 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 마음으로는 그렇다. 이 몇 명의 제자들만 해도 다 만나지 못하고 헤어질 텐데 앞으로 누굴 더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우리 학생들이 한국에 오면 시간을 내어 만나고 싶고 그 애들을 보러 베트남에 다시 오고 싶다. 공부하다 일하다 내게 도움을 청하면 귀찮아하지 않고 반갑게 연락하고 싶다. 이 인연만이라도 소중히 이어나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다낭소리] 마지막 방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