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말 그래로 작은 사회다. 배우려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있는 곳이라 여길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평가하는 자와 평가받는 자가 모인 곳이라 보는게 정확하다. 학교가 수단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학교 성적, 학교 생활을 통해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즉 학교는 진학수단이다.
모두에게 좋은 학교는 단언코 없다. 개인 경험상 교사가 편하면 학생들이 방치되는 환경이기 쉽고 학생이 편하면 교사들이 고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난 교사와 학생, 모두 만족도가 높은 학교를 경험했다. 오늘 글은 이런 학교에 대한 개인적 정리글이다.
학생과 교사가 모두 만족도가 높은 학교는 단지 행사가 많아 재미있는 학교가 아니었다. 성적이 높은 학교도 아니었다. 간단히 소개하겠다.
1. 민주적인 학교
교사도, 학생도 각자 본인의견을 자유로이 낼 수 있는 학교 였다. 교사들은 교사회의에서, 학생들은 공동체 회의, 전체 회의에서 자유로이 의견을 낼 수 있고 토의하는 학교였다. 물론 모든 의견이 민주적이고 도덕적이진 않았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의견이 나올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 쪽이, 힘이 강한 한쪽이 강제로 찍어누르는 경우는 없었다. 대화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꼭 있었다. 이런 학교는 학생, 교사 만족도가 높았다.
2. 존중하는 학교
교사가 교사를, 학생이 친구를, 교사가 학생을, 학생이 교사를 존중하는 학교였다. 물론 100% 모든 구성원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20%의 예외자는 있다. 허나 80%가 20%를 위로하고 이해하고 안고 가는 분위기 였다. 다르다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려 했고 자리를 내어주는 학교였다. 이런 경우, 교사들의 양보와 문화조성에 특별한 정성이 더해졌고 학생들도 스스로 해보려는 의지가 강했다.
3. 되는 법을 의논하는 학교
'이건 이래서 안되요. 이건 이래서 어렵습니다.'가 아니라 '오! 좋은 생각인데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봅시다.'는 말이 나오는 학교였다. 선생님들의 다양한 생각이 현실이 되었고 학생들의 흥미로운 제안도 현실이 되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관리자, 교장선생님의 철학이었다. 교장의 철학은 아주 중요하다. 빛날때 충분히 빛날수 있고 빛을 단번에 끌수도 있다. 좋은 교장선생님은 부정적 표현보단 격려와 희망을 말씀하셨고 여유로웠다. 그리고 본인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치 않았고 학생 곁에 있으며 많이 듣는 분이었다.
4. 학부모의 긍정적 참여가 활발한 학교
학부모는 특별하다. 학교의 주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주체의 역할을 하긴 어렵다. 교육과정을 짜기도 어렵고 학교 생활에 직접 참여하기도 어렵다. 자녀를 학교에 보낸 어찌보면 학교 눈치를 봐야하는 입장이다. 현재 학부모 참여는 주로 행사에 국한된다. 학교운영에 학부모를 교육주체라고 하는 것도 봤지만 현실적으로 허울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학생 가정의 한 주체가 될 수 없듯이 학부모도 학교의 주체가 될 순 없다. 주체는 될 수 없지만 건강한 객체는 충분히 될 수 있다. 학부모님 문화가 건강하면 학교도 당연히 건강해졌다.
5. 교사들이 상호보완하는 학교
이것이 중요하다. 교사들이 서로 빈 곳을 메워주는 학교. 요즘 학교에는 친목회가 예전의 역할을 하지 않는 학교가 많다. 친목회 주여 업무는 경조사 챙기는 것이다. 친목회에 가입하지 않는 교사가 늘고 있다.
교사가 연가(휴가)를 쓰면 수업을 바꿔야 한다. 수업을 바꿔주지 않는 교사가 있다. 긴 시간 연가를 쓰면 대체 교사를 본인이 직접 구해야 한다. 수업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다른 직장도 이런 시스템인지 궁금하다. 즉 교사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개인화 되고 있다. 안 받을테니 요구도 하지마라는 분위기다. 교사들이 개별화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교사는 보호받지 못했다. 지탄은 쉽게 받는다. 즉 내 앞가림에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교사가 개인적으로 살려하는데 어찌 학생을 위한 연대교육, 공감교육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은 매년 진급, 진학, 졸업, 입학한다. 교사 입장에선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매년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래서 연차가 쌓일수록 감동은 줄어든다. 감동이 줄어든다는 말은 낭만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학교가 낭만을 쫓는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낭만이 있다면 교사도, 학생도, 모두에게 특별한 곳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참 독하다. 7년에서 10년마다 바뀌는 교육과정 속에서도, 교사들 참여없이 위에서 결정되어 내려오는 명령식 하달에 대해 묵묵히 시키는 대로 해 왔다. '현장 목소리를 들어달라. 교사 정치기본권을 보장해달라.'고 꾸준히 외치면서도 그리 안되어도 교실을 지켜왔다. 바뀐 교육과정을 빨리 익혀서 아이들 손해보게 하지 않으려고 연구하고 공부한다. 정책 비판을 하면서 동시에 공부한다. 내 학생을 위하는 마음이 더 커서이다.
교사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열정적인 교사가 매 맞는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학생을 지도하다 보면 학생과 더 오랜시간 있어야 하고 더 많은 대화가 오고간다. 그러다보면 아동학대로 신고되고, 학부모 민원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교육청 징계도 많이 받는다. 물론, 당연히 모든 교사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교사들 고소, 고발은 이제 남 일이 아니다. 각 교원단체는 '변호사 선임' 서비스가 거의 필수인 분위기다. 이런 사회에서 열정적 교사, 좋은 학교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 회의적이다.
난 운이 좋았다. 위에 소개했던 좋은학교 두 곳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좋은 학교의 결정적 요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부모 민원인데 좋은 학교에는 학부모 민원이 거의 없었다.(학부모 민원은 있었지만 학부모회에서 자체적으로 잘 해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 학교측과 솔직히 소통하며 크게 번지지 않았다. 덮었다는 뜻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았고 대화를 통해 잘 해결되었다는 뜻이다.)
교사들이 학부모 눈치만 보지 않아도 아이들에 집중할 수 있다. 더하여 좋은 학교는 교사들이 관리자 눈치를 보지 않았다. 관리자는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어른이었다. 일을 해결해주는 교사편인 훌륭한 선배교사였다.
이 두 문제만 해결되어도 교사들은 학생에 집중해서 같이 고민하고 연대하며 신나고 건강한 학교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교사들이 신나고 건강하니 학생관계도 덩달아 좋아졌다. 정답을 아는 학교는 아니지만 같이 답을 찾아가는 학교였다.
좋은 학교가 많아지면 좋겠다. 난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진학이 중요하지만 좋은 학교 진학이 성공적인 삶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학생이 살아가며 진짜 힘들 때 힘이 된 것은 성적표가 아니라 절친이었고 존경하는 선생님과의 소통이었다.
글을 쓰다보니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같이 만족할 수 있는 학교가 완전 불가능한 것 같지는 않다. 100%는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학교는 달라. 우리 학교는 가능해.'라는 생각만 들어도 좋은 학교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는 교육전문가이다. 교사는 행정 전문가, 공문 전문가가 아니라 교육전문가이다. 학교는 행정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다. 이 부분만 정확히 자리매김해도 대한민국 학교는 더 좋아질 것이다.
일개 평교사의 넋두리 글이다. 깊은 의미는 담지 말고 담백히 읽어주기 바란다.
김용만 선생님은 좋은 학교를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좋은 학교다.
난 우리학교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