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란다.
"선생님, 저 더 이상 못 참겠어요. 학폭 신고할래요."
"애지(가명)가 속상한 일이 있었구나. 그래 누구를 신고하려고?"
"수진(가명)이요. 계속 저를 무시해요."
"수진이? 니 절친이잖아."
"네 그런데 계속 저를 무시해요."
"그랬구나. 수진이와 이야기는 해 봤어?"
"아니요. 걔는 제 말 안들어요. 학폭 접수해 주세요."
"그래 알겠다. 접수는 어렵지 않지. 그럼 이 종이에 내용을 적어줄래?"
"네"
2025년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평소 온순했던 애지가 찾아왔다. 애지와 수진이는 평소 사이좋았던 친구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애지가 얼마나 속상했으면 찾아왔을까. 마음을 헤아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학교폭력이 성립되려면 4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1. 2주 이상의 진단서가 첨부된 경우
2. 재산 상 피해가 있거나 즉각 복구가 불가능할 경우
3. 학교폭력이 지속적인 경우
4. 신고, 진술, 자료제공등에 보복행위(정보통신망)이 있을 경우
즉 위의 4가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전담기구를 거쳐 학교장 자체 해결로 처리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아래 두가지를 만족해야 한다.
1. 피해학생과 그 보호자의 심의위원회 개최 요구 의사의 서면 확인
2. 학교폭력의 경중에 대한 제14조 제3항에 따른 전담기구의 서면 확인 및 심의
학교폭력 업무 담당자로로써 친한 친구간 사소한 갈등을 학교폭력 절차를 통해 처리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라고 확신한다. 친구간 갈등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에 여전히 의문이 있다. 학교 안에, 자라나는 학생들 일에 어디까지 법이 적용되어야 할 지 솔직히 모르겠다. 자라는 과정에 갈등 상황은 당연히 겪는다. 가족간, 형제자매 간에도 갈등이 있으나 이 또한 가정교육을 통해 현명한 대처를 배워가야 한다. 당연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되는 악랄하고 지독한 학교폭력은 처벌받아야 마땅하나 현재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로만 대응하는 것이 교육적인가?에 대해선 교사로서 확신할 수 없다. 그만큼 갈등과 폭력은 복잡미묘하다.
말이 옆으로 샛다.
결론은 애지와 수진이 갈등은 삐짐이었고 학교폭력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내용을 용기내어 접수하러 온 애지에게 바로 말할 순 없었다. 그럼 애지는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 있었다.
애지에게 쓰라고 종이를 준 후 난 내 일을 했다.
한참 후 애지가 물었다.
"선생님. 이거 접수되면 어떻게 되요?"
"구체적으로 뭐가 궁금해? 수진이의 처벌이 궁금한거야? 아니면 니가 혹시 보복당할까봐 두려워서 그러는거야?"
"그냥 궁금해요. 이걸 제가 접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궁금해서요."
"애지는 뭘 바라는거야? 선생님이 솔직히 이야기하면 최고로 퇴학까지 당할 수 있어. 애지는 수진이가 퇴학 되길 바라는거야?"
"네???"
잠시 애지 눈빛이 아래를 향한 채로 좌우로 움직였다. 당황한 것 같았다.
"수진이가 완전 혼났으면 좋겠지? 학교를 같이 못 다닐정도로. 그만큼 애지가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지?"
"아. 아니예요. 전 그냥, 애지가 왜 나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대했는지, 그리고 제가 말 걸었을 때 무시했는지가 짜증났던 거예요."
"수진이가 애지를 무시해? 함부로 대해? 항상 그랬어?"
"아니요. 항상은 아니예요. 오늘 그랬어요."
"그래 알겠다. 우선 그 종이 내용을 다 적어서 선생님에게 줄래? 그럼 선생님도 절차대로 일을 처리할께."
"네 선생님."
수진이와 애지가 만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한 후 바로 수진이를 불렀다. 그리고 수진이 입장을 들었다. 수진이는 깜짝 놀랬다.
"네? 제가요? 제가 그렇게 대했다고요? 애지가 저를 신고했다고요?"
"수진이는 어떤 의도로 애지를 그렇게 대했지?"
"선생님, 솔직히 진짜 의도 없었어요. 평소와 다를바 없었어요. 애지가 그렇게 상처받았다니, 정말 몰랐고 미안하네요. 애지를 만나 사과하고 싶어요."
"안된다. 지금은 니가 원한다고 애지를 만날 수 없어. 애지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튼 수진이는 특별한 의도가 없었다는 말이지? 그리고 애지가 상처 받은 것도 몰랐다는 거고?"
"네. 돌이켜보니 제가 선을 넘었어요. 편한 친구라고 함부로 대했어요. 그건 분명히 제 잘못이예요."
애지를 만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애지야 수진이가 사과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때? 만나볼래?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전 수진이와 잘 지내고 싶어요. 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결론은???!!!!
두 친구는 그 날 화해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어깨동무하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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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이런 곳이다. 아이들은 이런 존재들이다. 솔직히, 세련되게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오해가 생긴다. 학교에서 오해 푸는 법을 배운다. 학생들끼리 해결하는데 힘들면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럼 같이 해결법을 고민한다. 잘 해결되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지낸다. 간혹 잘 해결되지 못하면 외부 도움이나 법적 절차를 따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법적 절차는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이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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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어른에 비해 즉 부모에 비해, 교사에 비해, 어리다. 약하다.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다. 어른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삐뚤어질려면 충분히 삐뚤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 폰만 있으면 뭐든 가능한 세상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란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가 있고 본인의 생각이 있으며 잘 살고 싶은 의지가 있다. 다만 방향이나 방법을 잘 모를 뿐이다. 이런 아이들은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해결해 줄 순 없어도 기분은 좋다. 나를 믿는다는 것이 뿌듯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탁해올 때, 100% 해결해주려고 노력하진 않는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잘 듣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대책은 무엇인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넌즈시 물어본다. 내가 해결해주지 않는다. 생각하는 법을 열어준다. 시간이 지난 후 아이는 나가며 이야기한다.
"선생님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제언 고마워요. 저도 잘 생각해볼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실 위 문장은 픽션이다. 저렇게 오글거리게 말하는 아이는 없다. 아마 저렇게 말하면 내가 먼저 '그냥 조용히 가라.'고 할 것 같다. 그냥, 저런 느낌의 요상한 말을 하고 간다. 어차피 난 뿌듯하다.^^
아이들은 흔들릴 때도 있고 거침없이 쑥쑥 클 때도 있다.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곁에 선 이가 있다면,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같이 고민해 주는 이가 있다면, 아이는 더 건강히 잘 자란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어른보다 문제를 직면하게 하는 어른, 미래를 지시하는 어른보다 본인의 삶을 보여주는 어른, 말 많이 하는 어른보다 잘 듣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좋아한다. 아니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자기말만 옳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분명한 사실은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 만큼 아이들은 함부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건강히 자란다.
자녀 미래를 걱정하기 앞서 내 미래부터 걱정해야 한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란다. 어른들도 알아서 잘 살자. 그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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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 중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위 예시는 한 단면일 뿐이다. 가출하고 폭력적이고 욕잘하고 담배피고 술마시고....등등 많은 학생들을 만나왔다. 학창시절 놀았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도 똑같이 그렇게 살고있는가? 아니었다. 놀라지 마시라. 경찰이 된 아이도 있었다. 정말 놀랬다. 헐~~~
지금 모습이 미래로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 걱정해서 부모, 교사, 어른들은 걱정한다. 지금 아이 주변 환경이 성인 될 때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쭈~욱 이어지면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들 환경은 계속 변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당연히 많은 변화 속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간다. 그러면서 성인이 된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아이들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능력있고 건강한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멋진 친구를 부러워하고 멋진 어른을 자랑스러워 한다. 본인도 그리 되고 싶은데 잘 안되면 짜증내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그럼 어떤가? 포기가 무조건 나쁜 것인가? 포기는 현명한 것일수도 있다. 손절을 잘하는게 실력이다.
혹시 지금 방문 잠그고 혼자 있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 계신다면? 그냥 내버려두자. 사춘기?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나도, 당신도, 사춘기 겪어왔다. 내가 잘 살아내고 있다면 아이도 잘 살아낼 수 있다. 부모 믿음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잊지 말자.
아이들은 건강히 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