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뭘 압니꺼!!!"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아요."
"선생님도 똑같아요!"
"저요? 아무 생각 없습니다. 그냥 사는 거죠. 제가 상상하면 이뤄질까요? 그럴리 없습니다."
"저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친구도 없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결혼 안 할꺼예요. 엄마, 아빠 맨날 싸우는 것 보면 결혼을 왜 하나 싶어요."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대화가 끊기는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난 아이들과 상담(?), 대화할 때 머릿 속으로 내가 얼만큼 말하는 지를 계산한다. 적어도 말하는 양이 학생과 내가 5:5가 되게 맞추려고 애쓴다. 그게 대화라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내가 9를 말하게 된다. 그럼 아이는 1만 답하는 것이다. 이건 대화가 아니다. 잔소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욕망만 채우는 것이며 나는 <지도>했다는 행위만 남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 대화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나름 대화 이어가는 기술, 상식, 공부도 한다. 학생과 대화를 잘 이어나가기 위한 나만의 기술이 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그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내가 학생을 잘 모르면 대화하기가 어렵다. 설사 대화한다고 해도 겉만 멤도는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아이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솔직하고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최근 불편하게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그 때 이야기할 시간 있는지 물어본다. 아이가 시간 된다고 하면 약속을 잡고 이야기 한다.
아이가 기분 좋고 유쾌한 상태일 땐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에게 무슨 대화가 필요한가? 이미 행복이 충만한데.
내가 관심 가지는 아이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다. 뭔가 불편하고 속상한데 그것을 어떻게 풀 지 모르는 아이,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 힘들어 하는 아이, 말을 하고 싶지만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는 아이가 내가 관심을 가지는 아이다. 이런 학생과 대화를 하다보면 흔히 말하는 삐뚤어진 아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삐뚤어진 아이는 불량한 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다친 아이다. 이미 색안경을 끼고 사회를, 세상을, 어른을, 자신을 보는 아이다. 이미 잘못된 답을 정하고 사는 아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런 아이와는 아무리 진실된 대화를 하려 해도 잘 안된다. 이미 자신만의 세상이 완곡히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난 삐뚤어진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난 다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의 여유만을 주려 한다. '꼭 니가 생각하는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야. 꼭 니가 느낀 대로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 꼭 니가 걱정하는 만큼 그 친구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그 아이가 10년동안 경험해서 확립된 생각이라면 10년은 다른 경험을 해야 고민의 여유가 생긴다고 본다. 그런 아이를 내가 가르치는 1년간 변화시킨다? 불가능하다. 교사가 신도 아니다. 앞서 말한대로 그런 아이가 있다면(적어도 이 아이는 생각만 바꾼다면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내 경험상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한다. 단! 바꿀 수 있다! 고 확신하진 않는다. 당연히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날 만났기에 '이런 어른도 있었지.' 정도만 추억하면 좋겠다는 수준으로 대한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는다. 아이를 다그치지도 않는다. 난 내 생활을 한다. 아이도 아이 생활을 살아낸다. 그러다 간혹 비틀거릴 때, 조용히 그 아이 곁에 선다. 그리고 '괜찮아?'라고 묻는다. 안 괜찮다고 하면 '선생님이 도와줄까?' 괜찮다고 하면 '그래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갈 길을 간다.
뒤에서 학생이 '선생님,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얼릉 돌아가서 부축해준다.
말은 참 쉽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연애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밀당(밀고 당기기)가 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무조건 끌려 가며 곤란하고 내가 무조건 끌고 가려해도 부작용이 더 많이 생긴다.
삐뚤어진 아이는 있다. 그 아이는 삐뚤어진 채로 자란다. 하지만 간혹 그 삐뚤어짐이 틀고 틀다가 바로 설 때가 있다. 그 때!!! 아이에게 자극을 준다. 지금 이 순간이라고! 이 순간을 기억하라고! 지금 니 모습도 진짜 니 모습이라고. 대부분 아이는 흘리지만 이 행위가 반복되다 보면 바로 서는 횟수가 늘수 있지 않을까?
교사는 희망을 안고 산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우리반 아이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나를 만난 덕분에 더 건강한 삶을 살면 좋겠다고, 이 아이가 나를 만난 덕에 더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꿈을 희망을 안고 학생을 만나고 산다.
나 또한 그렇다.
삐뚤어진 아이를 인정한다. 삐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도 이해한다.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척 할 순 없다. 많은 반항과 어려움이 있지만, 부모 아닌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그게 바로 교사라고 생각한다. 우리 반, 우리 학교 학생이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일이다.
내가 만난 삐뚤어진 학생 중에 건강한 자리로 바로 선 학생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정확하 말하기 어렵다.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만나 더 삐뚤어진 학생이 있냐고 한다면 그렇진 않다고 답하고 싶다. 남은 교직 생활에도 이 답만은 유지하고 싶다. 거창한가? 소박한가? 난 거창한 꿈이라고 본다. 사람을 바꿔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
교사는 신은 아니다. 그렇기에 하늘이 아니라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다. 비뚤어진 아이가 자라 비뚤어진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비뚤어진 부모가 된다면? 상상만 해도 슬프다. 보호받는 학생 신분일 때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난 훌륭한 교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만만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마무리
오늘 글도 만만한 글은 아니다. 이 글을 연재하다보니 교사로써 나를 돌아볼 수 있어 솔직히 좀 아프다. 그래도 후배 선생님께서 '선생님 글 잘 읽고 있어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요. 앞으로도 계속 볼께요.'라고 하신 분이 계셔서 계속 쓴다. 언제까지 이 부끄러운 글을 계속 쓸진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다시 강조하고 싶다. 난 훌륭한 교사가 아니다. 그냥 직업이 교사인 한 사람일 뿐이다. 내 글에 대단한 의미는 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냥 아이들과 오랜 시간 생활하며 느낀 것을 적는 것 뿐이다. 다음 주부턴 진짜 목요일을 맞추도록 노력하겠다. 나의 나태함에 살짝 짜증이 나려 한다. 읽어줘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