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중2병은 피해야만 하는 것인가?
중학교에 오래 근무했다. 10년 넘게 근무했으니 오래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중1부터 중3까지, 남학생부터 여학생까지, 그리고 학부모님들, 동료 교사들, 관리자분들까지,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다르다. 초등학교도 분명 다를 것이다.
선생님들 사이에 우스갯소리(?)가 있다. 학부모나 관리자들이 학생 나이에 맞게 선생님을 대한다는 말이 있다. 무슨 뜻이냐면 학생이 어리면 학부모나 관리자들이 선생님을 어리게,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대한다는 뜻이다 .즉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으로 갈수록 학부모나 관리자들의 요구나 간섭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난 유치원, 초등은 근무해보지 못했다. 중등, 고등만 근무했는데 내 경험상 위 말이 일리가 있었다. 실제로 중학교에 근무할 땐 관리자분들이 일거수 일투족 관리(?)하는 느낌이었고 자잘한 것도 보고를 해야하는, 허락을 맡아야 했다.(오랜 과거 일이다. 요즘은 아닐수도 있다.)
중학교 5년 근무 후 고등학교 갔을 때 고등학교 교사의 자유로움(?)이 신기했다. 중학교 있을 때 교무부장이나 교감샘, 교장샘께 허락 맡아야 했던 것들 대부분이 학년부장샘께만 말하면 되었다. 훨씬 자유로웠다. 수업도 자유로웠고 생활도 간섭이 거의 없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있을 땐 '우리 애가 집에선 안 그래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가니 학부모님 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다. 학생들이 집에서 알아서 필터링 하는 것 같았다. 뭐랄까, 중학생은 부모님 손바닥에서 생활하는 것이라면 고등학생은 부모님을 제압(?)하는 포지션 같았다. 당연히, 모두가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해서 그런지, 중학생들과 고등학생은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달라야 한다. 난 운이 좋았다. 교직 첫 발령이 남중이었다. 난 재미있었다.
"선생님! 시험 끝났는데 놉시더!"
"그래! 수고했다. 축구하자!!!"
"우와!!!!!"
중학생은 귀여웠다. 물론 철이 안 들어 여전히 다음 일을 예상하지 않고 지 멋대로 사고 치는 놈들도 있었다. 이 점이 고등학생과 달랐다. 고등학생은 적어도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은 한다. 중학생은 그러지 않았다.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애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수습은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했다. 어떤 부모님은 너무 많은 것을 학생에게 요구하고 대변했다. 학생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이 다 해주셨다. 학생이 다니는 교실일을 부모님께서 나서서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담임인 내 입장에서는 공정하지 못했다. 모든 부모님이 그리하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즉 부모님 후광이 아이들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부모님들께 부탁드린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
진정한 가정교육은 독립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져야 한다. 이것은 해줘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실수할 권리를 존중해야 하고 다시 도전할 여유를 보여줘야 한다.
내 입장에서 중학생은 어리다. 지들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뭐가 된 듯이 행동하지만 분명 어리다.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눈알이 굴러가는 게 보인다. 속내를 쉽게 알 수 있다.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 억울할 때와 신날 때가 금방 보인다. 그래서 다루기(?) 쉽다. 그만큼 아이들이 귀엽다.
중학생들은 집에서 있었던 일을 고대로 학교에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아침 조회시간 아이들 표정을 잘 살폈다. 표정이 안 좋은 학생은 십중팔구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집에 무슨 일이 있는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일을 중학생들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다. 내편이라고 믿는 선생님에겐 말한다. 하지만 이 말도 그리 친절하지 않다. 자기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서툰 아이들이 많다.
주로 중학생들이 하는 문장은 "짜증나요. 재밌어요. 심심해요. 킹받아요. 싫어요. 몰라요. 왜요.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헐!" 등이다. 그래서 아이들 말을 들으며 유추해야 한다. "그러니 니 말은 그 때 니가 오해를 받아서 섭섭했다는 뜻이구나. 맞나?" 이러며 감정을 정교화 시킨다. "네 선생님 맞아요! 제가 안 그랬거든요. 근데 엄마는 저보고만 뭐라고 해요. 전 아무것도 안했어요." 이 말은 '제가 엄마가 화내는 일을 100% 한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엄마는 그 자리에 있던 나에게 물으셨어요. 그리고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어요.'라는 뜻이다.
이런 식이다.
중학생은 나름 자기가 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구관계를 아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표현은 서툴다. 그러니 오해가 생기고 혼자 상상하며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즉 사실에 기반하지 않고 자기 감정, 친구 표현, 표정, 행동으로 판단하고 예측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양 의식해서 다른 친구나 부모님께 말한다. 듣는 사람은 당연히 말하는 사람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없던 일이 생기기도 하고 풀이 나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중학생은 몸이 자라는 시기다. 정확히 말하면 몸이 생각보다 눈에 띄게 많이 자라는 시기다. 아이도 혼란스럽고 어른들은 몸이 크니 생각도 컸으리라 생각하고 대한다. 기대한다. 그런데 키만 컸지 아직 아이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대우를 하지 않고 아이가 자란 것 처럼 기대한다. 그러니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가정에선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달리 대해야 한다. 책임을 물으려면 권한을 줘야 한다. 많은 가정이 아이에게 권한은 안주고 의무를 요구한다. 그러니 아이는 힘들고 엇나가게 된다.
결국 대화다. 참 어렵다. 평소 없던 대화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갑자기 잘 될 턱이 없다. 교사들은 전문가들이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이를 돕기 위해 애쓴다.
부모님들께선 아이 버릇 고쳐달라고 교사에게 요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집에서 해야 한다. 집에서 안된 것을 교사가 학교에서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4년을 기른 부모님이 못하는 것을 1년, 2년 본 교사가 어찌 바꿀 수 있겠는가? 게다가 부모님이 원하는 모습의 학생으로, 이것은 신의 영역이다.
학교에선 함께 생활하는 것을 가르친다. 민주시민의 기본 자질을 배운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을 직면하는 과정을 거친다. 중학교는 초등보다 전문적이다. 아이는 덩치만 자라는데 지식적 이해도는 깊어진다.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러니 본인이 답답한 것이다. 이런 중학생을 집에서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것은 분명, 부모님들이 시간내어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내 성격대로, 내 철학만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하는 것일수 있다.
중2병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2가 환자인가?
단어로 갈라치기 하지 말자. 그냥 중2다.
중1, 중3, 고2처럼 그냥 중2다. 아이도 중2가 처음이다. 본인도 당황스럽다. 적어도 부모님, 선생님들은 중2를 겪어오지 않았나? 본인은 아니더라도 그런 친구들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 때를 추억하자. 그리고 모르면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자. 대놓고 묻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묻는 것이 방법이다. 이 부분은 공부해야 한다.
제목이 거창했다. 사실은 '중학생 이해하기'가 아니라 '중학생은 특별하지 않다.'다. 적어도 난 그리 생각한다. '중2라서 그래!' 가 아니라 '중2가 되니 자라고 있네. 자라는 과정이야.'가 더 옳다고 본다.
중학생을 이해할 필요 없다. 그냥 그 모습대로 보면 된다.
도와달라하면 도와주고,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놔두면 된다. 도움이 필요해도 말 못하는 아이도 있다. 이때 부모, 교사 역할이 필요하다. 아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라는 것을 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를 잘 관찰해야 하고 관심있게 봐야 한다. 그리고 평소 신뢰가 있어야 한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중학생 때 겪지 않으면 고등학생, 성인 되었을 때 더 크게 터지는 사람도 있다. 여드름이 나는 것 처럼 자연스런 과정이다. 있는 그대로 보자. 그게 중학생을, 아니 아이를,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중학생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