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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dreads Apr 25. 2020

내가 불면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한 때 새벽 여섯 시에 잠에 드는 게 내 일상이었다.

 


 다들 내가 학업에 안일한 학생이라 수업에 안 갔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엄연히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래서 늦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흑야가 한창이던 핀란드는 내 우울을 더 극심하게 만들었다. 해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한두 시간이면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 말이다. 12층에서 내려다보던 땅은 온통 하얬고 하늘은 칙칙한 회색빛이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세상은 왜 존재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따져 묻기 바빴다.


 그래서 사람들을 좋아했지만 사람들을 좋아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잠깐 뿐인 시간들. 알코올과 니코틴으로부터 오는 행복은 잠시였다. 다시 내 집, 내 방에 들어와 깜깜한 밤 침대에 누우면 다 부질없어 보였다. 사람도 내 것이 아니고, 내 인생 또한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하며 그저 방랑하며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인 건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사실 불면증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20살 언저리에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고 나서 정말 극심한 불면증이 찾아왔었다. 밤새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고 당시엔 정해진 수면시간도 없이 잠에 들고 잠에서 깼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자고 싶지만 차오르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생각을 비우고 싶은데 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 내내 생각을 하다가 피곤에 찌들고 가장 지쳤을 때 잠이 들어 건강을 해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가끔가다가 불쑥 나를 괴롭히던 불면은 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너야. 밤이 찾아오는 게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두려웠던 건 내일도 어김없이 반복될 나의 하루였다. 오늘을 버티어내도 내일이 되면 달라지는 게 없었다. 매일이 생지옥이었다.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병원에 실려갔다. 처음으로 타본 구급차였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가족의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서 나는 약속된 일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퇴원을 하고 나와 가족을 기다리는데 마침 누군가에게 문자가 왔다. 나와 같은 학기에 교환학생을 가는 친구의 문자였다. 한 번도 만나본적 없던 그는 나에게 매주 학교에서 함께 영어 공부를 하자고 했다.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낯선 사람의 도움으로 인해 나는 다시 세상 밖에 나왔다. 그리고 그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처음부터 쉽게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밤에는 잠이 안 왔고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고통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낮에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에게 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았고, 나를 밖에 나오게 한 그 사람이 고마웠다. 당시 나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도 만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모든 만남이 내게 짐이었을 때 낯선이 와의 이상하고도 갑작스러운 만남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집 밖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 나는 밥을 먹게 되었다. 집에 있을 때는 하루에 한 끼조차 안 먹는 때도 있던 나였다. 하지만 꽤나 먼 곳까지 가야 했고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야 하던 나에게 점심을 챙겨 먹어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배고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그때 깨달았다. 나는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거나 때로 그와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다. 그 사람은 별거 아닌 일에도 나를 불러서 우리는 뜬금없이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고 드라이브 스루가 있는 카페에 들려서 음료를 시켜먹기도 했다.

 억지와 타의로 재개된 일상생활이었고 분명히 쉽지 않았지만 내 자신이 회복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다시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보통의 일상생활에 대한 기대와 나가고자 했던 노력에 의해 나는 조금 나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핀란드의 날씨는 회복된 나의 상태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교육학 시간에 배운 핀란드 사람들의 높은 자살률의 이유를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날씨만으로도 핀란드는 사람을 우울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 게 없었다. 학교를 갔다가 집에 와서 밥을 해 먹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시내를 가기엔 멀고, 주변엔 작은 쇼핑몰과 학교, 숲과 호수뿐인 동네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정말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매일, 갈 수 있는 모든 파티에 참석을 했다. 아는 사람들과 때론 모르는 사람들과도 술을 마셔댔고 파티가 없는 날엔 혼자서도 음주를 즐기기도 했다. 결국엔 음주를 해도 잠이 안 오는 날이 생기고야 말았다. 기억하자면 끔찍한 날들이었다. 술에 취한 기억들과 혼자 열심히 잠과 사투를 했던 밤들을 내게 선사했다. 내 자신이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습관들을 지닌 채로 나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모순 덩어리였다. 친구들은 내게 비타민 D까지 선물해주었지만 누구도 내 본질적인 우울과 습관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정말 잘못되었던 것은 날씨도, 술도 아닌 내 자신이라는 것을.




 그러던 나는 교환학생을 끝내고 여행을 다니며 불면증과 작별할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 영국에 처음 도착한 순간, 겨울에도 해가 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는 지극히도 평범한 날씨였지만 내가 한 학기 동안 간절히 바라던 날씨이기도 했다. 헬싱키에서 런던으로 넘어온 날, 나는 오랜만에 술 없이 잠에 들었다. 그리고 매주 혹은 매일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나는 침대에 눕기만 해도 꽤 잠을 잘 잘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많은 양의 에너지 소모, 그리고 건강한 식사. 좋은 날씨 또한 따라 준 덕분이었다. 일부러 학기가 끝난 후에는 날씨가 좋은 나라들을 여행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머무르며 자주 해변에 누워 하루 종일 일광욕을 즐겼다. 이젠 더 이상 불면증에 대한 고민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생활환경을 바꾸고 조금의 습관을 고쳤을 뿐이었다. 여행을 즐기기 위해 잠을 자게 되었다.

음주는 특별한 날이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고, 거하게 취하도록 마시는 날도 줄어들었다. 여행을 하며 몸을 많이 움직이고 신체적인 피로도를 높이는 게 잠을 잘 수 있는데 아주 도움이 되었다. 낯선 사람들과의 가벼운 만남만으로 사람 간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불면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되돌아보았을 때 불면증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건 집 밖에 나올 수 있었던 기회들이었다. 처음엔 타의였지만 바깥세상에 나오는 게 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오래전에 계획된 여행이 실제로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유럽의 도시들을 샅샅이 느끼기 위해 매일 지칠 때까지 걸어 다녔고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공항을 뛰어다니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해지고 있었다. 여행을 통해 미래와 사람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스트레스 없이 온전히 현재를 즐기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겨울의 바다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았고, 낮에는 느긋하게 동네를 산책했고, 매일 저녁 석양이 지는 모습을 찾아다녔다. 그 나라의 특산물들을 먹었고 맛있는 디저트를 사기 위해 오래도록 줄을 서기도 했다. 집에 있는 무료한 시간들보다 세상 밖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 좋았다. 돌아다니는 것이 행복했고, 움직이는 건 나를 잠들게 했다. 여행은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한 모습으로 나를 단련시키고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지금의 나는 전혀 불면에 시달리지 않는다. 잠에 빨리 빠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원하는 때에 잠을 잘 수는 있게 되었다. 여행은 분명 불면을 낫게 했다. 사람들을 다시 만날 용기를 주었고 내가 살아갈 원동력을 주었다. 시간이 흘러 걱정과 고민, 인간 관계의 스트레스에 힘을 빼는 법을 깨우치고 나니 적당히 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밤을 맞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집에만 있지 않는다. 집에만 있는 것이 나를 얼마나 해치고 괴롭게 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꼭 운동을 하고 집을 나가 새로운 걸 배우며 주어진 현재를 즐기도록 노력한다. 적당히 사람들을 만나지만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에겐 시간을 쏟지 않는다. 꾸준히 혼자서라도 여행을 한다. 서울에 있을 땐 주말마다 동네 서점을 돌아다니고 혼자서 한강을 걸어 다녔다. 인도에 와서도 격주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나를 밖에 두는 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잠에 들기 위한 음주를 하지 않는다. 대신 잠에 들기 전까지 그 날을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오늘도 열심히 보낸 하루를 정리한다. 불면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견디기 힘들었고 매일이 지옥 같았던 그때가 이제는 그런 날도 있었지 하고 회고를 할 수 있는 날이 온 것을 보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편으로는 오늘도 잠에 들지 못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있을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또한 지나갈 거라는 덧없는 말들 말고, 당신이 온 힘을 내어 지긋지긋한 밤들을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조금 더 실리 있는 말을 전하고 싶다. 건강을 위해 그리고 조금 더 나은 행복을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런 용기와 동기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당신께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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