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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dreads Jul 14. 2020

남초 회사에서 여자로 그리고 막내로 산다는 것 1편

방송국 기술 부서의 첫 여자 신입이 되다 

 직원이 천 명에 육박하는 우리 회사에서 나는 유일한 한국인 여성으로 일하고 있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 기계공학과 출신 및 각종 공대생의 집합소인 이곳에서 유일한 사범대생이기도 하다. 회사에는 나의 동년배도, 같은 성별을 지닌 동료도 없다. 하지만 조금 심심하긴 해도 이 자리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이전 직장에서도 나는 부서의 유일한 여자 직원이었고 막내였으며 내 사수는 나의 삼촌뻘의 나이를 가진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방송국에 다닐 때는 부서 최초 여자 신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직장 내 차별이 만연한 곳은 아니었지만 긴 역사를 가진 부서임에도 내가 유일한 여자 직원이라는 사실이 뜻하는 바는 잘 알고 있었다. 내 첫 과업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여자라면 응당 ~ 할 것이다라는 편견 어린 시선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커피를 타지는 않았지만 커피 심부름을 종종 다녀야 했고 식당에 착석을 하면 가장 먼저 세팅을 하고 물을 따라드려야 했다. 그게 오랜 관행이었고, 예절인 동시에 막내의 할 일이었나 보다. 그래도 부장님의 자녀뻘이고 국장님의 손녀뻘이던 나는 예쁨도 많이 받았다. 사무실에서는 배가 고프지 않게 항상 각종 디저트와 음료들이 배달되었으며 나름의 자유시간과 자기 계발 활동도 존중받을 수 있었다.


 사실 첫 직장인 방송국과 현재 직장 모두에서 유일한 여자이자, 막내 그리고 신입으로 일하고 있어 그와 다른 조직과 비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여성 인권이 열악하다는 인도와 두 남초 직장에서 겪은 얘기들을 써 내려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노트북을 켰다. 사범대를 진학한 나는 남초 직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왔고 미래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여고 출신에, 남자 사람 친구도 몇 없었으며 내가 다니는 사범대학에도 여자의 비율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첫 남초 집단에서의 생활은 캐나다에서 했던 교육 실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처음 남녀공학 중학교로 배정을 받은 나는 학교에 내 실습과목이 없던 탓에 일주일도 안 되어 토론토의 한 남자 고등학교로 다시 배정을 받았다. 남고에서 교생실습을 하게 되다니. 미처 예상도, 단 한 번의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남자 고등학교에 가본 건 한국에서 오 년 전 축제 시즌에 놀러 가 본 경험이 전부였다. 아, 친오빠의 졸업식도 갔었다. 가끔 내가 사는 동네의 남자 고등학교를 지나칠 때면 그냥 그들이 부러웠다. 수업이 끝나도 자발적으로 모여 축구를 하고, 과격한 장난을 치거나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것이 그랬다. 여고의 문화는 조금 달랐다. 수업이 끝나면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거나, 버블티 카페에 갔다. 운동을 하는 대신 앉아서 편하게 수다를 떠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남초 집단, 조직에서의 생활이 궁금했다. 여자로 태어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인생이 아쉬웠던 탓일까, 의도하진 않았으나 나는 대학 입학 이후에 교생 실습과 두 번의 직장 생활 모두 남자로 가득한 학교와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남초 회사를 다니며 좋았던 점은 마이웨이가 가능했던 것이었다. 꾸미거나, 꾸미지 않아도 어차피 내가 제일 생기 있는 사람이었다. 화장을 하는 사람보다는 안 하는 사람이 더 많았던 직장에선 자연스럽게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꾸밈 노동에 종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살이 조금 쪄도 괜찮았다. 물론 머리를 자르고 미용실에 가서 펌을 하고 와도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회사 안에서 학습된 여성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업무만 잘 해내면 되었다. 방송국의 엔지니어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했고, 외모 따위엔 신경 쓸 에너지도 여력도 없었다. 과하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다른 취향과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예의를 갖추되 나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었고 나의 휴일과 휴가에 관여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유와 존중.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생활에서 지켜지기 힘든 덕목들을 쉽게 이뤄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나를 제외한 팀원들과 나이 차이가 났던 것도 한 몫했다. 이미 오래 살아본 직장 상사들은 축적된 생활 방식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대범했고, 자유로웠으며 큰 물에서 놀았다. 큰 물에서 놀았다 함은 평소 나에게 어렵게만 보였던 일들을 그들은 척척 해낸다는 것에 있었다. 주말이면 골프를 치러나갔고, 해외여행을 한 달간 다녀오면서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내겐 그저 멀고도 어렵게 느껴진 일들이 그들에겐 친숙했고 당연했다. 쇼핑보다는 자동차, 집, 주식과 같은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얘기를 하는 것도 내겐 새로운 세상이었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주저함이 없었다. 문제가 생겼을 땐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때론 아팠지만 그러한 솔직함은 내 면역을 높였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과하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도, 배려도 없었으며 무의미한 감정노동을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조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만 할 수 있는 근무환경은 지금 돌아보면 꽤나 큰 행운이었다. 방송국. 그리고 기술직이 가졌던 특수함이란 사회적 시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술을 다루고 방송으로 내보내는 영상이 제일 중요했기에 나를 포장해야 하는 강박도 스트레스도 없었다. 조직의 유일한 여자라는 것의 장점은 있는 그대로의 남초 직장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 사고방식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처음 일을 배우며 '일'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터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었다. 남자들로 가득한 직장은 오랜 관행이 이어져왔을 뿐이지 여자라고 못 할 일은 없었다. 더불어 남초 직장이 여자 직원에게 갖는 편견도 없애고 싶었다. 주어진 일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물론 유일한 여자 직원이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일말의 자부심도 있었다. 남자로 똘똘 뭉친 집단에 능력을 인정받아 들어온 것도, 친절하고 깔끔한 일처리에 대한 칭찬도 그랬다. 그래서 내가 괜찮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자만할 때면 어김없이 혼자 여자로 일해야 했던 사무실의 모습이 보였다. 나 한 명이 인정받기보다는 문화가 바뀌길 바랬다.


 국장님은 한 기술직의 면접에서 여자는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뽑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력도, 능력도 남들보다 뛰어났던 한 여성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했음을 전해 들었다. 믿기 싫었지만 실존하고 있는 차별이었고 기업 문화의 현실이었다. 여자라고 버티지 못할 거라는 편견, 약하다는 편견과 책임감이 없다는 편견. 그 모든 편견도 차별도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일했다. 혹여 아프거나 업무에 대한 실수로 틈을 보여주는 것은 여성에 대한 오해로 직결될 것이 뻔했다. 여성임에도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여자는 일을 잘한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완벽하게 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나는 다양한 측면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실수 없이 완벽하게 일을 하기 위해 기존의 체계를 바꿨다. 내가 하는 업무에 전문성을 부여하면서도 막내가 응당 해야 하는 일에도 신경을 썼다. 주어진 업무 그 이상을 해내는 것이 나를 다르게 보고, 여자를 다르게 볼 것이라고 믿었다. 보이는 능력 그 이상의 일을 하는 것. 세심하고 빠른 일처리 그리고 소통 능력에서 우월함을 갖는 것. 끊임없는 개선과 자기 계발. 몇 달간의 노력 끝에 그런 노력은 다행히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내 후임으로 여자 직원이 뽑힌 것이다. 


 나에 대한 이미지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맞았다. 나의 능력은 여성의 능력이었고, 나의 친절함은 여성의 친절함이었다. 막내라서, 여자라서 갖는 편견들은 표현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었다. 컴퓨터를 모르고, 기계를 모르고, 주식을 모를 것이라는 편견. 허약하고, 부질없이 치장을 하는데에 시간을 쏟는다는 편견. 여자는 이럴 거야. 혹은 이래야 해. 수많은 편견을 깨 내는 일이 나의 할 일이었고 앞으로도 남아있는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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