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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것들의 생각 Sep 12. 2023

쥬스이야기

쥬스는 맛있는데 조금 위험한거 같습니다.

중학교 가기 전까지는 세상에 오렌지 쥬스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 다들 보리차를 담는 유행에 흠뻑빠졌던 그 유리병... 그 쥬스를 어머니가 사 오시면 정말 반정도는 그 자리에서 다 마셨어요. (쥬최몇?) 주변의 어른들이 잘 먹는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거기에 신나서 또 벌컥벌컥. 아시겠지만 쥬스 마시고 나면 엄청 목마르거든요... 단맛이 강해서. 거기에 물까지 벌컥벌컥. 네 어릴때 전 상당히 통통했답니다. 그 시절에 본 오렌지 쥬스 유리병 라벨엔 늘 '무가당'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렇게 시고 단데 당(아마도 설탕)을 넣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오렌지는 도대체 얼마나 단거야? 네 그때까지는 오렌지도 먹어본적이 없었답니다. 

몇 년 전 사촌의 결혼식 때문에 미국에 갔습니다. 가족들과 마트에 갔는데 거긴 다 크잖아요. 나름 코스트코(저희시절에는 프라이스 클럽이었는데)에서 단련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그야말로 대패, 콜라는 진짜 사람 몸뚱이만 하고 과자들은 왜 이렇게 크게 팔지. 하면서 돌아다니는데 운명처럼 오렌지 쥬스가 눈에 띄었어요. 그때만 해도 뭔가 웰빙? 이런 게 있어서 올가닉이라던지 헬스 라던지 라벨에 오렌지보다 풀 이미지가 더 많았는데 그냥 오렌지 주스더라고요. 마트에서 괜히 슬쩍 끼워도 욕안먹고 결제까지 무사도달하는 상품이 있잖아요. 저희집은 오렌지 쥬스랍니다. 예예. 결론적으로 거기서 산 오렌지 쥬스는 다 맛있었어요. 아마 여행 보정이 있긴 하겠지만 정말로 다르다! 훌륭하다!는 느낌. 나중에 찾아뵌 큰 고모님도 어디선가 사오신 오렌지 쥬스를 큰 컵에(미국은 왤케 다 크담) 담아 주셨는데 그것도 맛있었다는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저 먼 아이슬란드를 큰맘 먹고 놀러 가서도 오렌지 쥬스를 마셨습니다. 한겨울이었는데 거긴 진짜로 다 비쌌거든요. 한참 차를 몰고 가다가 일행들이 배고파서 반경 1km 이내 늑대나 흰곰 같은 게 무조건 있을 거 같은 자동차 휴게소에서 쥬스를 샀어요. (실제론 없다고 합니다) 거기서 먹은 쥬스맛은 뭐랄까 그냥 쌉쌀했던 기억만 있네요. 막 엄청 가라앉아있고 뭐 그런느낌. 유통기한이 애매했던거 같아요. 

거기뿐만이 아니라 오키나와에서 모 식당에서도, 대만에서 땀 뻘뻘 흘리다 더워서 들어간 편의점에서도, 제주도는 말할 것도 없고... 왜인지 저는 오렌지 쥬스를 지독하게 사랑했네요? 이쯤 되면 오렌지 쥬스를 시키는 DNA가 있는 건가? 사실 아담과 하와는 오렌지를 먹고선 그 오렌지를 숨기기 위해 사과에게 덮어 씌운 건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겠죠. 

어디든 가면 이상하게 한 번씩은 먹는 음식이 있는데 저에겐 햄버거, 콜라, 쌀밥(?)과 함께 늘 오렌지 쥬스가 포함되어 있음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다음에 어딜 가게 되면 정신을 바짝차리고 오렌지 쥬스에게서 도망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오렌지 쥬스 도피 여행기. 재미있을 거 같지는 않고요.

근데 생각해 보면 오렌지의 주 산지는 거의 전 세계에서 몇 곳으로 정해져 있으니 거의 다 비슷한 맛이려나 싶기도 하네요. 요즘엔 뭘 마시냐고요? 전 요즘엔 ABC주스를 마십니다. 80ml짜리 애기용. 네. 슬프게도 주문을 잘못했어요. 정말 오렌지 쥬스가 생각나는 맛이네요. 옛날 생각도 나구요. 그래서 어지럽게 써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큼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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