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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May 29. 2024

진짜 육아휴직이 시작되다.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 

작년 육아 휴직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육아보다는 일에서 번아웃이 너무 심해 단지 무작정 쉬고 싶었다. 그동안 워킹맘으로 살며 잘 버틴 나에게 일 년간 안식휴가를 주고 싶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살리기 위해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휴직이었다. 휴직과 동시에 나는 나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실행했다. 신앙을 회복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독서와 일기를 쓰고 그림책 심리를 배우며 하루하루 나의 마음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로 내 마음은 많이 단단해지고 지금은 용기와 자신감도 제법 채워졌다. 이제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 자신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니 이제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이슬비가 내리는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친 딸에게 전화가 왔다. 비가 오는 데 우산이 없으니 데리러 와달라는 전화였다. 부리나케 우산을 챙겨 집과 5분 거리에 있는 학교로 데리러 가는데 비가 오긴 오는데... 이슬비 정도다.  웃음이 났지만 우산을 가지고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이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태권도 학원까지 마치고 집에 왔는데 바지에 실수를 한 흔적이 있다. 장염끼가 있는지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해놓고 학원에서 누가 볼까 봐 걱정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어찌나 속이 상한지  아이에게 이제는 엄마가 집에 있으니 아프거나 이런 일이 있는 경우 바로 연락하라고 그러면 엄마가 당장 데리러 갈 수 있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첫째는 4살, 둘째는 2살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 나로 인해 어린이집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이들은 그동안 아프거나 집에 오고 싶어도 나의 퇴근시간까지 기다리며 그 시간을 밖에서 견디고 있어야 했다. 물론 아주 많이 아플 경우 뛰어갔지만 대부분은 태권도 학원 한 구석에 앉아 쉬면서 나를 기다리던 아이들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아기였을 때부터 당연하게 견뎌왔던 아이들을 생각하니 너무 대견하고 미안하고 감사하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 시간들이 지나버리고 어느덧 아이들은 초등학생 4학년과 2학년이 되어 지금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아졌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은 그동안 엄마의 부재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지금은 툭하면 전화를 해댄다. 딸은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기 전 엄마가 집에 없으면 전화해서 어디에 가있냐고 묻고 누구를 만났냐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리고 아들은 이제 매일 가던 태권도학원을 그만두고 격일로 가는 축구 학원에 다닌다. 그것도 선수반으로.. 


태권도 학원이 워킹맘인 나에게 얼마나 의지가 되었는지 끊을 때가 되니 느껴졌다. 그래도 아들의 삶에서 태권도의 문이 닫히고 축구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축구는 부모의 뒷바라지가 필수였다. 축구 선수반 등록과 동시에 나는 여러 단톡방에 초대되었고 아들의 매니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어색하고 낯설지만 이제 더는 피할 길이 없었다. 무조건 적응해야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들의 학교 반모임에도 처음 나가보았다. 첫째 딸은 코로나 때문에 이런 모임이 없었고 둘째 아들이 일 학년일 때는 단톡방조차 들어가지 않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학년 단톡방에서 반모임 참석 투표를 하고 전 날 긴장이 되어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렇게 쭈뼛거리며 처음 학부모 모임에 나가 보았고 생각보다 어색하고 낯설지 않아 잘 다녀왔다. 그 자리에 참석한 엄마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참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엄마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반대로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잘 해왔구나 라는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반모임 참석이라는 예방주사를 맞고 둘째 축구 경기 일정이 잡혔다. 당연히 따라가야 하므로 남편한테 그날 휴무를 잡으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그렇게 첫 경기에 참여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작년에 한번 참석해서 안면이 있었기에 낯설기보다 다들 환영해 주셔서 감사했다. 

게다가 아들이 보란 듯이 첫 골도 넣어주어 아들의 열정을 지지해 준 나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주에는 딸의 태권도 대회가 있고 아들의 축구 경기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있다. 


6년을 워킹맘 모드로 살다가 잠시 전업맘이 되어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문득 이게 맞나?라는 질문이 나에게 떠오른다. 이제 다시 워킹맘이 되어야 하는데 괜히 아이들을 전업맘 모드에 맞춰놓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워킹맘이 되어 지금 벌려놓은 모든 내가 감당할 있을까 하는 겁도 난다. 그래도 결심한 것처럼 미리 걱정하지 말고 지금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장해 버린다. 지금의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일 년 전의 나였다면 아들의 축구 선수반은 엄두도 못 내고 아이들의 시간을 들여다 보기보다는 하루하루 버티며 살기 바빴을 것이다. 잠시 쉬어가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잠시 나 자신과 아이들의 시간을 점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금 이 시간이 다시 워킹맘이 되어 달려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쌓는 시간이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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