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어주는 사람들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말 것인가 혼돈 그 자체였던 나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고통 속에서 빨리 결단을 내야만 했다. 어차피 그만둘 거라면 시간을 끌수록 민폐가 되고 서로가 힘들어지기에 얼른 결단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직종 특성상 세금 신고기간이 되면 퇴사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더 불안감에 휩싸였다.
내가 더욱 죄책감에 휩싸였던 이유는 면접을 보고 생각보다 내가 빨리 채용되는 바람에 전임자가 퇴사하는 시점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비었다. 어차피 경력직이라 인수인계는 하루면 끝나므로 회사 입장에서는 두 명이 한 달 동안 일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무실에서 일하기로 결정하고 한 달 후에 첫 출근을 했던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비우고 나를 믿고 채용했는데 그런 내가 못하겠다고 그만둔다고 말하자니 스스로 너무 부끄럽고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입사한 지 하루 만에 모든 걸 세팅해 준 막내 직원들한테도 너무 미안해진다. 그렇게 불안감과 죄책감에 휩싸여서 혼란스웠던 시기에 내 생일이 왔다.
입사한 지 3주 정도 되었고 여전히 혼돈 그 자체인 시점에 생일은 무슨.. 아무 감흥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생일을 챙겨주어 마지못해 생일을 즐겼다. 딸이 엄마 생일이라며 깜짝 편지를 건네주었다.
'엄마 회사에서 기죽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
기가 죽다 못해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내 심정을 딱 들키니 딸의 편지를 읽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가족들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여기서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불행하고 힘든 모습을 딸에게 그만 보여주고 싶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출근해서 그만두겠다고 하려 하니 하필 세무사님이 나가셔서 안 들어오신다.
입사한 지 2주가 지나고 3주 차 시작점에서 하루라도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예의가 아니지만 카톡메시지로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적응하지 못하고 이렇게 그만둔다고 하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었다. 부끄럽고 비참했지만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데..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세무사님은 일단 알겠다고 답장을 하시고는 다음 날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면담이 시작되었는데.. 많이 힘드냐고 물어보신다.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일은 많은데 손도 느려지고 속도가 느려져서 따라가기가 너무 버겁고 힘들다고 말했다. 적응도 안되고 실수할 것 같아서 못해내겠다고...
눈도 못 마주치고 털어놓는 나에게 세무사님은 그건 일 년을 쉬다가 해서 그런 거라며 자기가 볼 때는 내가 잘 해낼 거라 생각한다고 하신다. 여기서 부딪혀보고 이겨내야지 포기할 거냐고...... 실수하면 수정하면 되는 거고 가산세도 대신 내줄 거고 힘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본인에게 말하라고 하신다..
본인은 원래 그만둔다는 직원을 절대 안 잡는데 처음으로 잡아본다고 덧붙이며... 정 그만두고 싶으면 바쁜 시기가 끝나고 한가한때 다시 말해달라고...
세무사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만두려는 생각이 수그러들었다. 내 성격상 이렇게 말하면 나는 충성한다. 나의 인정욕구를 간파하신 걸까.
나는 나를 못 믿겠어서 빨리 도망가려는데 왜 다 나를 믿는 걸까......?
나만 빼고 다 나를 믿어준다
아 이제 그만두지도 못한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