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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루루루 Aug 24. 2020

자소서 쓰기가 어려운 이유

  한동안 '지원 동기' 앞에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한숨만 내리 쉬는 일상이 이어졌다.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커서가 신경 쓰여 깜빡이는 리듬에 맞춰 눈을 떴다 감았다 하기도 했다. 몇 번을 반복하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마음먹었다. 네이버 어학사전에 들어갔다. 동기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사전에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라고 쓰여있었다. 그렇다면 지원 동기는 지원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일 뿐이다. 한 마디로 왜 지원했느냐 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쉬운걸 왜 못 쓸까..


자소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나처럼 자소서 앞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지원동기. 연봉이 높아서, 복지가 좋아서, 비전이 있어 보여서,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여서 라는 원론적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글을 자소서 보는 기업 입장에서 좋아할 리가 없었다. 자소서 쓸 때 어려운 점 첫 번째는 기업이 좋아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그렇기 위해 식상하지 않고, 읽기 좋고, 기업에 칭찬은 하되, 그 속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 잡힌다. 


여기서 어디까지 내 소개를 해야 하는지, 내 자랑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자소서는 결국 나를 소개하는 글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강점을 가졌고, 합격하면 어떤 부분에서 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설명해야 하긴 한다. 하지만 이 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나는 이런 걸 잘해요. 나는 능력 있어요.라는 내용을 쓰는데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이 부분에 강점이 있는지 한마디 한마디 글을 쓸 때마다 '너 진짜 이런 능력 있어?'라고 되묻는 느낌이었다. 나를 더 잘 파악해야 한다는 점, 내 삶을 되돌아봐야 된다는 점, 그 점에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 자소서 쓸 때 생기는 두 번째 어려움이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을 많이 되돌아보게 됐다. 자소서 쓰면서 얻은 몇 안 되는 유익한 점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 빠르게 지나가는 인생살이는 추억에 잠길 정도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여유를 아이러니하게 자소서 쓰는 시간 동안 많이 얻게 됐다. 한시도 쉴 틈이 없이 자판기를 두드리고 글을 완성해야 할 시점에서 생긴 이 여유로 한참 동안 과거의 추억에 빠져있었다. 대학 시절 했던 동아리에 대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그 당시 추억이 떠오르고, 그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르고, 그 시절 내 풋풋함에 미소 지어진다. 추억 속에서 빠져나오면 그 미소는 현재 내 처량한 모습과 대비되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자소서 쓸 때 생기는 세 번째 어려움은 과거 기억을 되돌아보면서 마주하는 추억과 마주하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이다.


지원동기, 1분 자기소개, 강점, 가장 슬펐던 기억, 본인의 가치관, 등등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글을 쓰면서 지금껏 썼던 그 어떤 글보다 시간 투자를 많이 했고, 

그 속에서 좌절도 많이 하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고 보면 자기소개서는 오히려 본인을 깨닫게 하는 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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