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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Apr 15. 2024

세상에 공중파에서 일본 가요를 듣다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문화 교류 혹은 승부다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보낸 뒤 복귀한 회사에서 업무 폭탄이 떨어져 허우적대고 있다. 책을 펴기보다는 유튜브를 열는 시간이 조금 늘었다. 알고리즘은 최근 딸이 엄청 듣고 있는 'YOASOBI'를 추천하고 있었다. 무심코 보는데 출처가 엠넷이다. 화들짝 놀라 다시 쳐다봤다. 역시 엠넷이다.


  인터넷으로 세계 어떤 나라의 문화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라디오를 통틀어 지상파에서 일본 노래를 듣기란 쉽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이미 한일 대중 개방을 했지만 인식이라는 건 쉽게 바뀌지 않는 듯했다. 일본 문화가 수입되면 우리 문화 산업이 망할 수 있다던 우려가 있었지만 <해적판>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익숙한 이들에게는 '왜?'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우리 연예인이 일본 방송에 출연하지만 우리 방송에서 일본 연예인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이유는 다양할 거라 본다.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음반 시장을 가지고 있어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 굳이 있다면 미국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연예인에게 내주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점점 갈라파고스화되어 가고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발전했다. 어쩌면 이제는 동등한 자존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Mnet 요아소비

    작년 <최애의 아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를 강타했다. 애니와 만화책을 접한 적은 없지만 딸은 어느샌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좋아한다고 특이 남자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평소에 윤하를 좋아하는 딸은 노래를 쉽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물론 아빠가 일본 노래를 자주 듣는 게 영향을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YOASOBI의 엠넷 출연은 신선했다. 공중파에서 일본 가수를 보다니. 고화질 직캠이 나오다니... 10년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일본 가수의 등장은 무의식 속에 존재했던 문화적 열등감이 해소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요즘 친구들은 그저 동등한 각 나라의 문화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때만 해도 팝송을 듣는 것은 수준이 있는 것이었고 JPOP은 개성이었다. 일본은 <X-JAPAN>과 <아무로 나미에>를 대표로 엄청난 아시아를 석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송 페스티벌에 <하마사키 아유미>가 온다는 사실에 서울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해야 할까 고민도 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일본은 성장형 아이돌이 주류가 되어 버려 '미숙하지만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유행했다. B'z 같은 여전히 괜찮은 가수들이 많았지만 AKB의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는 대히트를 쳤다. 이 COPY는 회사 가치관 관련 자료에도 종종 등장한다. AKB와 쟈니스의 압도적인 힘은 일본 아이돌을 미숙함으로 만들어 버리는 부작용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많은 대중에게 콘셉트가 통하지만 '완전체'를 원하는 우리의 시선에는 이상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MBN 한일가왕전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MBN의 '한일가왕전'으로 이끌었다. 종편에서 하는 트롯 경연은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린>이 나온다는 이유만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다. 한국 탑 7과 일본 탑 7의 대결이다. 어떻게 보면 트롯과 엔카의 대결이랄까.


  최근 국내에서는 트롯이 여전히 인기 중이다. 반대로 가장 최근의 엔카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불과 몇 해전까지만 해도 엔카는 팬층 확보에 고심 중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 편견이 있었을까. 일본 대표들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사실 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살짝 되지 않을 정도로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들 실력자이기 때문에 비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단지 취향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린>의 무대만 보다가 하나의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스미다 아이코>가 부른 '긴기라니 사리게나'였다. 우리말로 하자면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라는 뜻인데 아마 격정적이지만 지나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담은 듯하다.

한일가왕전 - 스미다 아이코,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

  1981년에 발매한 이 곡은 일본의 <버블시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한국인들의 향수도 건드리게 된다. 돈이 넘쳐나던 시절의 일본 음악은 절망이 없다 랄까. 대부분의 장르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애절함도 신남도 아닌 그 '절망 없음'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음악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실이다.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라든지 '셀럽파이브'가 모티브 한 <오기노메 요코>의 'Eat You Up'을 들어보면 장르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그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뒤이어 <주디 앤 마리>의 'over drive' 마저 나왔다. 트롯 경연 프로그램이었지만 가수의 청량함이 추억 속으로 나를 계속 이끌었다.


  서점에는 매달 일본 작가의 신간들이 쏟아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히가시노 게이코> 뿐만 아니라 오래된 <오자이 다사무> 역시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고 일본 신인들의 도서 또한 지속적으로 출간된다. 일본은 도서 시장 또한 우리보다 월등히 크기 때문에 출간되는 책의 수도 많다. 그래도 도서 시장에 일본을 배척하는 느낌은 없다. 텍스트와 책이 대중에서 멀어져서일까? 일본 애니메이션은 아주 오래전부터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얼마 전 '슬램덩크 더 퍼스트'는 메가 히트를 이어 갔다.


우리는 왜 유독 공중파에서만 이런 정서를 보일까?


  정서의 문제라고 얘기하면 정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저 관성처럼 거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여전히 마음속 앙금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결정권자에게). 혹은 경제 보복을 하고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그들에게 허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역사에 관해서는 적국 수준으로 대하는 마음이다.


  아베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일본과 우리는 더 많이 냉랭했다. 역사와 정치 그리고 경제와 문화는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선을 그을 필요는 있다. 해와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동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이 사과하기를 바라지만 원수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없다. 대치하면서도 뒷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문화는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해 왔다. 우리 세대가 일본 문화에 익숙하듯 지금의 일본 세대는 한국 문화가 익숙하다. 좋아하게 되면 알고 싶어 지게 된다. 좋은 관계여야 그것을 유지하려는 에너지가 모이는 것이다. 사과는 그런 호감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 문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서울을 방문해 서대문 형무소를 견학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소프트 파워라는 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닐 거라 믿는다. 국가적인 결집력이 점점 약해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런 힘이 필요할 것 같다.


  일본은 여전히 큰 시장이며 아직도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시장이다. 최근 한류가 세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큰 시장이 가지는 힘은 결코 무시할 순 없다. 아이돌 대 아이돌로 비교하자면 압승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거대한 애니메이션 파워에서 나오는 OST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기타 하나 둘러메고 일본 시장을 호령하는 <아이묭>을 보면 시장의 수용성은 여전히 우리보다 넓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I-DLE>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라는 음원의 히트는 우리 음반 시장의 갈증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나 싶다. 한때 섹시로 도배된 가요 시장에 등장한 <여자친구>의 청순함이 기류를 바꾸어 듯 말이다.


  자본주의는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게 당연하고 좁은 한국 시장에서 트렌드를 쫓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나머지 갈증은 다른 문화에서 해소하게 된다. 레거시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이미 대중은 소비를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중파 역시 미국이나 일본처럼 더 많은 외국인 가수들이 출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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