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못나게 굴었을 때 읽기 위해 쓰는 글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 귀엽게 느껴질 때가 많아졌다. 당신께서 보시기에 나는 아직 애 같겠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내 눈에 귀여움 필터를 장착시킨 것 같다. 특히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귀여움을 느끼는 빈도가 잦은데, 아무래도 더 많이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그냥 평범한 행동과 일상인데 엄마가 귀엽게 느껴진다. (의미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존대법은 생략한다.)
엄마의 미소를 의미하는 '엄마미소'가 엄마를 향한 미소가 되는 순간들을 한 번 적어보았다.
1. 화장실의 수건들을 다 같은 색깔로 맞춰 가지런히 걸어둘 때
- 수건들 틈에서 같은 색을 골라 꺼내고 착착 걸어두는 엄마를 상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2. 카카오톡 프로필과 배경 사진을 열심히 고를 때
- 내가 찍어준 사진이 올라갔으면 하는 승부욕이 생긴다.
3. 노트 디자인을 이것저것 비교하며 고를 때
- '이 그림이 더 예쁘다, 아니야 이게 더 낫지?' 엄마가 소녀처럼 느껴진다.
4. 최애 아이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 때
- 한동안 BTS에 빠지셨고, 덕분에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
5. 다양한 이모티콘을 적극 사용할 때
- 물음표는 절대 쓰지 않는 엄마의 이모티콘 활용 능력이 갈수록 올라간다.
적어놓고 보니 참 소소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우리 엄마 귀여워.’ 짤들처럼 공감을 받진 못할 듯하다. 그런데 왜 나는 얼핏 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상황들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을까. 아마 부모님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내가 일방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려놓은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기대했다가 혼자 실망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챙겨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천하려고 조금씩 더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철이 없고 내가 하는 행동들이 효도라기엔 망망대해의 멸치처럼 미미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엄마의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안다.
내가 엄마를 귀엽다고 느낀 다양한 순간들은 '뭉클'을 밑바탕으로 한다. 엄마도 엄마로서의 삶은 처음인데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였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도 꽃 한 송이에 설레고,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한 소녀라는 걸 깨닫는 지점들에서 느껴진 고마움, 미안함, 사랑 같은 감정으로 가슴이 꽉 찬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가슴이 뭉클한 순간을 덜 낯간지럽게 표현한다. '귀여운 우리 엄마 ㅎㅎ'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