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파전칼국수>
요즘 세상에서 4,000원이란, 어쩌면 티끌만 한 동전일지 모른다. 스타벅스의 메뉴판 아래선 외면당하고, 편의점에서는 삼각김밥 하나에 종이팩 음료를 들고 나면 손바닥이 다시 비게 되는 액수다. 조금 더 들여다봐도, 이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풍경은 많지 않다. 그러나 작다고, 하찮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서울 외곽의 오래된 빵집에서 크림이 가득 찬 둥근 빵 하나. 종이봉투 속에 담긴 건 단지 빵이 아니라, 잊고 있던 유년의 오후 한 자락이다. 동네 문방구에서는 볼펜 두 자루와 작은 메모지. 무언가 다시 써보려는 다짐이 그 속에 눌러 담긴다. 도서관 앞 낡은 자판기에서 뽑은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은, 낯선 이와의 짧은 눈맞춤 속에 묘한 온기를 전한다. 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4,000원이 황학동의 아침 햇살 속에서 막걸리 한 잔과 소박한 안주가 되어 배를 채운다.
그 돈은 ‘무언가를 사는’ 돈이 아니라, 오히려 ‘잠시 멈춰 쉬는’ 돈이다. 속도를 줄이고, 숨을 고르고, 눈앞의 작은 기쁨 하나를 찬찬히 바라보는 값어치.
태안 서부시장 한복판, 낡은 간판 아래 조용히 피어 있는 국숫집이 있다. 이름은 <파전칼국수>. 이율배반적인 이름 뒤에는 사연이 있다. 1990년, 두 자매가 파전을 지지며 시작한 가게였다. 하지만 파전을 찾는 손님은 드물었고, 자매는 칼국수만 남겨두었다. 간판을 바꾸려 했으나 이미 이 골목의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되어버린 탓에, 팔지 않는 음식을 여전히 이름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이름은 어쩌면,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조용한 다짐일지도 모른다.
이 집의 칼국수의 가격은 4,000원. 그냥 칼국수가 아니라, 바지락이 한가득 들어간 바지락칼국수다. 여느 집처럼 젓가락을 휘저으며 조개껍데기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 이 집에서는 국물을 들이기 전에 바지락만으로 배가 부른다. 그 바지락은 중국산이 아니다. 이른 새벽, 바다를 다녀온 아주머니들의 손에 건네받은, 갯내음을 안은 생명이다.
처음엔 500원이던 한 그릇은, 35년이 흘러 이제 4,000원이 되었다. 그마저도 2019년, 겨우 천 원 올린 값이다. 다시마로 우려낸 깊은 육수, 손으로 썬 면발, 고명처럼 내려앉은 깨소금. 단순함을 지킨 시간은 곧 이 집의 신념이다. 손님은 그저 “두 명이요”라 말하면 된다. 현금만 받는다는 원칙도 이 집의 시간 속에는 당연한 일이다.
그 단출함 속에서, 시장 상인도, 동네 어르신도 줄을 선다. 그들은 국수 한 그릇이 아니라, 이 집이 품은 정성과 신뢰를 기다리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바지락이 퍼뜨리는 바다의 첫 숨결. 국물은 깊고 시원하며, 면발은 손의 온기를 머금는다. 길쭉한 면 사이로 굵기가 제각각이라 젓가락질조차 시처럼 흘러간다. 이 작은 국숫집은, 오늘도 시장 수레의 덜컹이는 소리 사이에서 조용히 국물을 끓인다.
두 자매의 주름진 손끝이 건네는 온기는 이름에서 사라진 파전 대신, 칼국수 속에 살아 숨 쉰다. 그 한 그릇이 전하는 서정은, 파전의 달고 고소한 맛만큼이나 진하고 오래간다. 이곳에서의 4,000원은, 마음을 쉬게 해주는 온기이며, 오래된 다짐의 깊이이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조용히 붙잡아 두는 값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