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을 읽고
p75-76 서른 통의 부적을 읽고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고독. 인생+권태기, 일상에 무력감을 느끼고,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되며 나를 저 지하 끝으로 끌어내리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침대로 기어 들어가 낮잠만 몇 시간 씩 자대는 그런 시기다. 한 일주일 정도 그렇게 '나는 세상 한심한 사람'으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싹 낫는다. 내 방은 밤 12시 이후 잠잘 때만 찾는 공간이 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뭐하지?'라는 생각으로 설레며 하루를 알차게 살 거라고 다짐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이 필사는 나를 지하에서 건지기 위해 시작한 행위이다. 어느새 10일이 지났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하던 나를 못 움직여 안달 나게 만들어 준 이 행위. 나는 앞으로도 이 행위를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다.
'행운'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내 행운의 아이템 베스트 파이브!
1. 외할머니가 주신 네잎클로버 부적 - 지갑 안에 항상 넣고 다닌다.
2. 큰고모가 주신 행운의 2달러 - 이것도 지갑 안에!
3. 일본, 대만에서 뽑은 '길(吉)'이 적혀있는 운세 종이 - 얘도 지갑에!
> 그런데 요즘 지갑 대신 카드 몇 개만 들어가는 카드지갑을 가지고 다녀서 새롭게 장만한
4. 최고심 행운 부적!
5. 프렌다프롬플랜드의 하늘색 트레이닝 셋업 - 이 후드 집업을 입고 계를 탔었지..
p77-79 정성껏 듣기를 읽고
나의 장점 중 하나는 '경청'이다.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정성껏 듣고, 적절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비언어적 표현만큼 언어적 표현을 잘하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mbti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 내 주변에서 보기 힘든 T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내 친구들은 거의 다 F다. "나 우울해서 화분 샀어."라는 말에 "무슨 화분 샀어?"라고 물어본다는, 그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매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T. 내 경우에는 맞장구를 쳐 주고 싶은데 어떤 말로 맞장구를 쳐야 할지, 위로를 해줘야 할지를 몰라서 그렇게 화분의 종류를 묻는 버벅거림을 반복한다. T와 F의 차이를 알고 난 뒤, 악의 없는 행동이지만 F 친구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필터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내가 당신들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 T에게 질문은 관심의 표현이라는 말이 있듯...
p80-81 필요한 것은 즐거움을 읽고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응원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동경한다. '집에 가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라는 말을 줄곧 하는 사람보다는 자기 일을 애정하고, 회사를 미워하지 않는(?) (물론 회사를 향한 일방적이고 전폭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1을 주면 1만큼은 일하는) 사람이 좋다. 그 편이 훨씬 삶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직장을 잡아가는 시점에서 내가 돌연 어학연수라는 결심이 선 건,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선 내 전공인 중국어를 좀 더 유연하게 구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곳곳을 누비며 제주에 이어 나만의 여행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노재팬의 여파로 중국 여행이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었고,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주는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9년부터 계획했던 중국 어학연수가 2020년 코로나로 무산이 되었다. 2021년 가을학기는 나의 무지로 신청을 놓쳤고.. 그러다 2022년이 되어서야 진척을 보이게 됐다. 즐거운 시간이 되길 빈다.
p82-83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을 읽고
얼마 전 할머니가 시골에 내려가셔서 내가 약 일주일 동안 아빠의 점심과 저녁을 책임져야 했다. 할머니가 동태찌개, 코다리찜을 만들어두고 가셨지만 매일 같은 반찬을 주는 건 성에 차지 않았다. 나와 아빠는 같은 반찬을 몇 끼 이상 먹으면 물려서 안 먹는, 할머니 골치를 썩이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한 끼는 할머니가 해둔 반찬을, 한 끼는 내가 만든 반찬을 메인으로 밥상을 차렸다. 다행인 것은, 아빠의 입맛은 까다롭지만 장벽은 낫다는 거다. 맛있기만 하면 어떤 종류의 요리든 거부감 없이 잘 드신다. 그런 아빠에게 인정을 받은 새로운 요리는 아보카도간장계란밥과 청경채우삼겹볶음이다. 어느 날 할머니가 과일 가게에 있길래 그냥 한 번 사보셨다는 아보카도 3개가 냉장고에 그대로 박힌 채 1주일이 넘게 지났다. 그러다 한번 아보카도를 썩혀서 버린 적이 있기에 얼른 이걸로 무엇이든 만들어 먹어야 했다. 예쁘게 아보카도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건 수고에 비해 포만감이 덜하고..'할머니 말마따나 몇 시간씩 운전하는 아빠에게 빵을 줄 순 없지!'라는 어느새 할머니 신조에 스며든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 생각난 아보카도간장계란밥. 아보카도를 손질해서 잘 으깬 후에 기름에 노릇하게 구운 계란 프라이와 진간장 두 스푼, 김가루는 다다익선. 간단하지만 든든한 한 그릇이다. 거기에 간장 베이스로 짭조름하게 볶은 청경채우삼겹볶음은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상! 아빠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는 점심이었다. 아빠와 일주일을 지내며 아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매우 기뻤다.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로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p84-87 어떻게 고를까를 읽고
얼마 전 나를 간파당해 놀란 적이 있다. 편집해 올린 브이로그의 한 장면에서 어떤 케이크를 먹고 싶냐는 질문에 특정한 케이크를 말하는 대신 "나~? 음..."하고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 나는 고민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을까 봐 우물쭈물 댔던 건데, 그걸 딱 알아챈 친구가 '저네윰이 나~? 하면 끌리는 거 있는 거야 있는데 말 안 하는 중인 거야'라고 댓글을 달았다. 때때로 내 마음을 잘 숨긴다고 생각했는데, 친한 사람들 눈에는 그게 다 보인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라 무척 놀랐다. 그리고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날 이렇게 관찰하고 파악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게.
내가 받은 독특한 가정교육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옷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다는 거다. 같은 의류회사에서 영업부 소속이었던 아빠와 디자이너였던 엄마 말고도, 친할머니, 외할머니, 이모, 막내 고모가 의류업계에 종사하셨다. 그래서 나를 잘 꾸밀 줄 아는 사람으로 클 수 있었다. 문제집에 있던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지는 않았어도, 오늘 내 아웃핏 outfit이 어떤지 항상 물어봤고, 가족들은 항상 '괜찮다.' 혹은 '이건 과하니 빼라.' 이런 식으로 피드백을 해줬다. 그런데 요즘은 나에게 어떤지 물어보는 경우가 늘었다. 할머니는 점심 산책을 하러 가시면서 어떤 모자가 더 잘 어울리는지 나에게 물으시고, 디자이너였던 이모는 나에게 요즘 괜찮은 브랜드가 어딘지 알려달라고 한다. 그들의 보살핌 아래 센스가 늘었는데, 이제는 그들에게 나의 센스를 드러내고 있다. 기분 좋은 배턴 터치다.
p88-89 재미있는 사람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세련되고 멋진 사람이다. 나를 가꿀 줄 아는 사람. 내면, 외면 모두를 통틀어서 말이다. 외적으로는 스타일이 좋고, 내적으로는 단단하고 똑똑하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일도 잘한다. 자기 관리를 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향이 확실하다. 그 취향은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갖고 싶은 취향인데?'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만큼 매력이 있다. 내 주변에는 이런 멋진 사람들이 몇 명 있다. 부끄럽기도 하고 그들의 프라이버시도 있기에 실명을 밝히진 못 하겠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피드를 보면서 나의 취향 지도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곧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언젠간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p90-91 대화의 포인트를 읽고
이건 부끄러우니까 비밀.
p92-93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다
글쓴이의 말대로 '만날 수 있으면'이라는 절을 붙이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아끼는 마음이 한층 더 도드라진다. 나는 당신이 보고 싶은데, 둘 사이의 만남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선택권을 상대방에게 주는 뉘앙스다. 얼마 전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의 관계는 가는 실처럼 약 13년이나 이어져오고 있다. 마지막 만남은 2018년 2월 즈음이었고, 그 이후로 SNS로 아주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을 뿐 서로 실제로 만날 기회는 없었다. 최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서로를 재단하며 만나지 않았던 어렸을 적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이 친구는 그중 하나인데, 같은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친해지게 되었고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은 족히 가야 하는 곳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에서 만나는 친구를 꼽자면 이 친구가 꽤 높은 순위에 올라있었다. 그러다 이 친구가 고등학교를 아주 멀리 가게 되면서, 만남이 뜸해졌고 재수를 하고 내가 교환학생을 가고.. 이러면서 연락도 뜸해지게 되었었다. 그러다 작년 겨울, 생일이 딱 하루 차이가 나는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며 '올해는 좀 보자'라고 말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그때는 좀 더 조심했을 때니까..) 약속이 흐지부지 되어버렸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그래서 올 생일에는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다'라고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염려를 담은 표현이었다. 하지만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약속을 빠르게 잡았고 그날을 기다리며 남은 11월을 보냈다. 아무리 친했던 친구라지만, 어언 3년 만에 만나는 자리인데 혹여나 어색하진 않을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걱정도 잠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할 만큼 그동안의 이야기로 꽉꽉 채웠다. 여전히 우리는 10대 청소년처럼 취향이 통했고, 사소한 것에 꺄르르댔고, 몹시 즐거웠다.
p94-96 독서의 묘미를 읽고
나에게 오래 사귄 친구 같은 책은 바로 이 책, <일상의 악센트>이다. 유일하게 두 번째 읽고 있는 책인 점(책도, 드라마도, 음식점도 두 번 가는 경우가 드물지 정말..), 원서를 처음 사본 책이라는 점, 제대로 필사를 해보는 첫 책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건' 두 번째지만, 사실 읽으려는 시도를 한번 더 했었다. 처음 책을 읽고 '와 이 책 진짜 너무 좋은데'하면서 일본어 공부를 함께 해볼까 하고 원서를 주문했는데, 그 원서가 오는 동안 흥미가 팍 떨어진 거다. 다시 읽어보려 책을 편 순간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로다. 그래서 원서는 오자마자 번역본과 함께 몇 년째 책장에 박혀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필사를 해볼까..?'하는 마음에 책장을 들여다봤을 때 '이 책을 필사하면 즐겁겠다!'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렇게 다시 펼쳐보게 된 <일상의 악센트>는 나의 도돌이표 같은 일상에 작은 변주가 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하나 소개하자면 "You can always edit a bad page. You can't edit a blank page.", 미국의 소설가 조디 피코가 한 말이다. 내 블로그 소개글이기도 한데, 별로이거나 안 좋은 페이지는 언제나 고칠 수 있지만 빈 페이지는 고칠 수 없다는 그러니 계속해서 기록하고 글을 쓰라는 나를 위한 말이다. 정말 별로인 단어로 글을 완성해도, 그 뉘앙스는 담겨 있으니 언제고 다시 고쳐 쓰면 된다. 더 멋진 말로. 더 괜찮은 표현을 덧붙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별로이니까 내일 다시 생각해보고 써야지-해버리면, 그 페이지는 영영 비어버린다. 내일이면 오늘의 감정을 모두 담아내는 게 어렵기도 하고, 하루라는 시간은 꽤 길어서 머릿속에 맴돌던 단어를 잊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헛소리 같아 보여도 몇 자라도 끄적여보자는 마음으로 필사를, 나의 글을, 블로그를, 영상 편집을 계속하고 있다.
p97-98 선물 가설을 읽고
이 책을 통해 '선물 가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참 로맨틱하다. 이성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그 선물을 들고 가느라 직립 보행을 시작하게 되었다니...! 선물하는 행위를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글쓴이와 함께 '선물 가설'에 힘을 보태보겠다.
p99-101 곁에 있어준다는 것을 읽고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감정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을 때, 동네 친구를 불러 '야 술 한 잔 하자.'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지금 내 곁에 그럴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더 깊은 상실감에 빠졌었다. 실연을 당했을 때 울면서 전화를 하면 위로를 해주는 친구가 있었고,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강제 탈덕을 당했을 때 푸념을 받아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둘을 만나기 어려운 상황. 물론 이들이 내 친구의 전부는 아니다. 시종일관 단톡방에 300+이 찍힐 만큼 활발하게 연락하는 친구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이 톡을 주고받는 친구도 몇 명 된다. 하지만 그 당시 내게 필요한 친구는 '야 술 마시자.' 하면 당장 나올 수 있는, 집 근처에 사는 친구였다. 내가 한탄하듯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본 것일까? 최근 취업을 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개인 톡이 왔다. 잘 지내느냐고. 원래 이 친구와는 서로 힘든 일이 생기면 밤에 오래도록 통화하는 사이였지만, 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해서 정신없을 친구에게 나의 힘듦까지 지우고 싶지 않아서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그리고 선약을 조정하면서까지 나를 만나러 우리 동네에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네가 친구가 없는 게 아니라, 친구들 상황 고려해서 '바쁘겠지?'라는 생각에 말을 못 꺼내는 거야'라며 나를 달랬다. 그리고 부르면 언제든지 나가는 친구니까 부담 없이 얘기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이후로 내 마음의 깜깜한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나의 요술램프지니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