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주
‘앞으로 생일에는 혼자 여행을 가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보겠어!’라고 마음을 먹고 난 후 처음 맞는 생일, 홀로 제주를 여행하기로 했다. 학교에 다니던 중이라 해외를 가기엔 제약이 많았기에 제주는 당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매일 저녁 파티가 열리는 게스트하우스 붐이 일어나던 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6인 도미토리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협재에 있는 작은 숙소의 조용한 개인실을 예약했다.
교수님께 양해를 구해 두 시간짜리 수업을 한 시간만 듣고 김포 공항으로 달려갔지만, 제주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급행 버스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지날 때는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다행히 숙소를 한 번에 찾아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여성분이 자신을 이곳의 스태프라고 소개하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살갑지만 똑 부러지게 방을 안내해준 그녀는 다시 거실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뒷모습엔 내 삶에는 없었던 여유가 묻어났다.
2학년 2학기, 다중전공까지 하게 되어 치열하게 학교생활을 하던 나와 상반되는 모습에 내내 ‘부럽다’는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숫기가 없어 줄곧 방 안에 콕 틀어박혀 있느라 그녀의 이름도 나이도, 뭐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 채 그 숙소를 떠나왔지만, ‘나도 제주에서 이런 생활을 해보고 싶다’라는 꿈을 갖게 해줬다는 점에서 스물한 살의 제주 여행을 회상하면 빼놓지 않고 그녀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