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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쓰 Dec 10. 2023

웰컴 투 헬단풍국

2019년 말에 이 곳의 삶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코로나로 힘들었지만 완전히 lock down이 된 도시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에 있는 게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절대 이곳에서 혼자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2022년 12월, 다시 캐나다 토론토로 돌아왔다. 그리고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많은 기업이 없어지거나 규모를 축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고 한다. 일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은 됐지만 한국에서 거의 매일 일을 했기 때문에, 3개월 정도 쉬고 3월부터 슬슬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정말 운이 좋게 바로 일을 구해 1월 중순부터 주 40시간을 보장받으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헬조선'이란 말이 있는데 그렇다고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이 '헤븐'인 것은 절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몇 번이나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한국 가고 싶어. 여기 너무 그지 같아'라고 톡을 보냈다. 그러자 사촌동생이 '여기도 거지 같지만 그래도 혼자 고생하는 것보다 가족들과 가깝게 사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란다. 


우선 돌아와 보니 물가가 1.5배에서 1.8배 정도 올랐다. 세금 포함 $10불이면 테이크아웃 볶음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젠 최소 $15불은 내야 하고, 안에 야채도 별로 없다. 첫 출근 날, 점심시간에 혼자 한식당에 가서 감자탕을 시켰는데 세금과 팁을 포함해 정확히 $20불을 냈다. 그리고 그 감자탕엔 감자 1개와 약간의 양파를 제외한 야채는 전혀 없었다.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 등뼈는 흔히 쓰이는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원가가 말도 안 되게 싼데(아마 한국보다 쌀 듯) 그 등뼈 몇 개가 들어있는 빨간 국물을 2만 원이나 주고 먹었다. 서버는 단 한 번도 '맛이 어떠냐', '다 괜찮으시냐' 물어보지도 않아서 국물이 짠데도 그냥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팁은 15%를 냈다. 


내가 이 도시를 떠날 때의 최저시급이 $14.25였는데 돌아와 보니 $15.50이다. 렌트비와 외식비 같은 물가는 최소 1.5배가 올랐는데 최저 시급은 1불도 안 되게 오른 것이다. 팁은 기본 15%고, 적지 않은 곳에서 기본으로 18%를 설정해 놓았다. 내가 워홀러일 땐 팁 받는 직업의 최저시급이 조금 더 낮았는데 이제 그런 구분도 사라졌다. 결국 식당이나 술집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들이 웬만한 entry level 직장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이상한 구조가 되었다. 은행 텔러가 시급이 $18 정도인데 내가 아는 워홀러 친구가 식당에서 시간당 최저시급 $15.50 (2023년 10월부터 $16.55)에 팁 $10 정도 해서 평균 $25를 번다. 은행 같은 큰 회사는 승진이 빠른 편이고 승진할 경우 연봉도 오르기 때문에 2-3년 후를 생각한다면 버틸만하겠지만 나처럼 작은 회사, 개인이 하는 회사에 일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없다. 


캐나다 오면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다른 도시는 모르겠지만 토론토는 아니다. 식당에서 공고를 올리면 최소 30개가 넘는 이력서가 들어온다. 내가 일하는 곳도 구인 공고를 올리면 정말 많은 이력서가 들어온다. 내가 1차로 이력서를 거르는데 정말 미안하지만 캐나다에서의 학력과 경력이 없는 이력서부터 거른다. 캐나다엔 퇴직금 제도도 없고, 연차 같은 개념도 없으며,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 주의 경우 보험이나 유급 병가 같은 제도는 전적으로 회사 맘이라서 법적으로 보장받는 게 전혀 없다. 심지어 직원을 해고하는 것도 쉽다. 


쥐꼬리만큼 벌고 미친 듯이 치솟은 방값과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돈만 못 모으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거리에 미친놈들도 정말 많다. 마리화나가 합법이 되면서 중독자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지 길거리에 홈리스들도 정말 많아졌고, 그냥 이유 없이 칼로 찌르거나 공격하는 묻지 마 범죄도 늘었다. 하도 지하철 역에서 누가 죽었다는 기사가 많이 올라와서 뉴스 기사 알림 자체를 꺼 버렸다. 그냥 두 귀를 닫고 사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아직 이곳에 있는가.

한국이 헬조선이 된 바로 그 이유들과 더불어 내 나이와 성별의 제약 때문이다. 

그럼 캐나다엔 그런 문제들이 없는가? 

없을 수도? 하지만 차원이 다른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어떤 문제들이 그나마 버틸 만 한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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