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이스 Jan 02. 2020

영주권자가 되다.

2018년 8월 23일, 내가 캐나다 영주권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진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고, 그를 증명하는 서류들을 제출하고 진행 비용을 결제한 날. 이후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지나가며 한 해가 마무리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에 잠시 왔다가, 보통은 6개월 정도 걸린다던 서류 심사가 그렇게 8개월이 지나고, 9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당시 나는 내 인생에 있어 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여권과 지갑을 분실하여 반나절을 러시아 경찰서에 있었고 겨우 임시 여권을 받았지만 공항에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 나자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부 사라지고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결국 나는 이후의 유럽여행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한국으로 갓 돌아온 상태였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원래 한꺼번에 오는 거라 했던가. 영주권 서류 심사가 모두 끝나 여권 사진을 보내라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내가 캐나다가 아닌 한국에 있었던지라 한국에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알아봤으나 무려 2주가 걸려 결국 내린 결정은 '캐나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한 달 안에 여권 사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부리나케 편도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캐나다로 향했다. 무사히 여권사진과 여권용 사진을 이민국에 보내고 2주쯤 지났을 때, 영주권 최종 승인 편지가 날아왔다. 

정식 영주권자가 되려면 이 서류를 가지고 국경을 나갔다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래서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캐나다 들어오면서 영주권자가 되려고 함) 차가 없는 나로서는 미국에 갔다 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친구와 함께 나이아가라 국경에 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 내로 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라는 답변만 받은 채 토론토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영주권 서류를 제출하고 1년이 지난 상황이었고, 남들에겐 6개월 정도 기다리기만 하면 끝날 일이 나에겐 영주권을 신청할 때보다 더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결국 코피를 두 번이나 쏟았다. 


9월에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지역 이동을 할 예정이었기에 우선 밴쿠버로 갔다. 다행히 밴쿠버는 미국과 가까웠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국경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투자하여 미국과의 국경에 가서 드디어, 마침내 공식적인 영주권자가 되었다. 지난 약 6년의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스쳐 지나가며, 나 자신이 뿌듯하고 대견해지며, 한껏 감격한 상태가 될 줄 알았으나 사실은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저 그 지긋지긋했던 기다림이 끝나고 더 이상 징그러운 일처리를 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너무 홀가분하고 개운했다. 


2주 후, 집으로 영주권 카드가 도착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영주권 카드'인가! 신기한 마음에 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보내고, 아무래도 실감이 안 나 한참을 들여다봤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카드를 볼 때마다 신기하고 어색하긴 하다. '그래. 사람들이 이 카드 하나 얻자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영주권 취득에 성공한 나 자신이 조금 뿌듯해졌다.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영주권자가 아닌 일명 '외국인 노동자' 였던 나도, 영주권자가 된 나도 그냥 '나'일뿐이었다.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했다는 기쁨에 젖어 똑같은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빨리 잊고, 훌훌 털고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이런 좋은 일이 생겼어도, 나 자신에게 '그래. 수고했어' 한 마디 해준 후,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계속 노력하는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네디언은 정말 친절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