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냈던 독일인 친구가 곧 독일로 돌아가게 되어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단둘이 만났다. 캐나다에서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캐나다 커피 체인인 팀 홀튼에 가서 그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바닐라 라테를 마시며 서로 엄청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잔뜩 풀 죽은 얼굴로 "그레이스, 난 정말 내 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라며 속상해했다. 난 아직도 그 순간 그가 지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야, 너는 돌아가도 독일이잖아. 나도 가고 싶다. 독일!"이라고 하자 그렇지가 않다며, 자신은 캐나다가 너무 좋다며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캐나다가 왜 독일보다 더 좋은데?"
비자가 끝나면 캐나다에 남을지 독일로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할지 고민 중이었던 나의 물음에 마치 기다렸듯이 한 친구의 대답은 '캐나다 사람은 친절하니까'였다.
맥도날드에 들어가면 직원이 상냥하게 인사하고, 모르는 사람과도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친절하고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가 좋은데 독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sorry'와 'thank you'를 달고 사는 이 곳 사람들은 국제적으로도 '친절하다'라는 인식이 강한데, 진짜 국민성인지 아니면 그냥 선입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당시 나는 유럽을 가본 적이 없었으므로 내 친구가 하는 말을 굳게 믿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캐나다 사람들은 친절한 것 같았다.
십 년 전쯤 이민을 오신 아는 분께 들은 이야기로는, 길에서 조금만 두리번거려도 바로 사람들이 다가와 '도움 필요하니?', '길 잃었니?' 하며 물어보고 도와주려 했다고 한다. 요즘은 그때보다 더 이민자도 많고 동양인의 외모를 한 캐나다인이 많으므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불친절하고 무례한 사람들을 빼면 전반적으로 착하고 상냥한 것 같긴 하다.
그로부터 몇 년쯤 지났을까, 문득 이 모든 게 가식 같이 느껴졌다.
식당 직원들이 친절한 이유야 팁을 더 받기 위해 그런 것이고, 안녕? 다음에 바로 물어보는 "how are you?"는 그저 단순한 인사일 뿐, 정말 내가 어떤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니까. '나 지금 직장에서 잘리고,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친구에게 배신당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냐는 말이다.
습관처럼 말하는 'sorry', 'thank you' 에선 더 이상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미안해서, 정말 고마워서 하는 말 같지 않았고, 심지어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이들의 친절한 모습이 더욱 가식처럼 느껴지고, 무섭기까지 했다.
같은 말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말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석되고 이해된다. 그들은 언제나 똑같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가 이내 점점 생각이 많아지며, 심지어 의심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더 이상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정말 친절한 것인지 아니면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것뿐인지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무조건 다들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의 사회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언제나 똑같았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누군가가 착한 사람이 될 수도,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면 나는 그들을 착한 사람이라 믿어주고 싶다.
물론 여기도 진상 손님들, 또라이 같은 직장 동료들, 미친 것 같은 직장 상사가 있긴 하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도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레 인사하고, 날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귀걸이가 예쁘다며 칭찬하다가 다시 또 쿨하게 자기 갈 길 가는 이 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