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이스 Feb 07. 2019

나이는 숫자일 뿐

흔히들 하는 말 중에,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나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부분이 아닌 게 분명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의 나이부터 신경을 쓴다.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 확인하기 위해 꼭 상대방의 나이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심지어 일본도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진 않는다고 한다. 


내가 사는 이 곳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남녀 사이에 첫 데이트 자리에서도, 심지어 이력서에도 나이는 적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모두가 모두를 그 사람의 이름, 혹은 격식을 갖출 땐 성으로 부르기 때문에 상대방의 나이는 쉽게 말해 내 알 바 아닌 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동양인들은 특히 더 어려 보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데 나 또한 내가 굳이 내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7, 8살은 어리게 보는데 내가 굳이 내 나이를 말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비밀은 아니기에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은 해주는데 그럴 때마다 몹시도 놀라는 그들의 반응이 가관이다. 


나는 8년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1년을 넘게 매일 얼굴을 보며 같이 일한 동료의 나이를 모른다. 그들의 나이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몇 살인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억하지 않는다. 친한 사이는 나보다 적은지 많은지만 기억하는 정도다. 


이러한 문화는 이민자들에겐 더 없는 기회가 된다. 

중. 고등학교 때 유학을 와서 현지에서 대학을 가고, 이 곳 사람들과 거의 똑같은 길을 가는 유학생들에겐 사실 별 차이가 없겠지만 한국에서의 직업과 경력을 포기하고 이 곳에 온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이 곳이 우리나라처럼 나이를 중요시하는 사회였다면 분명 취업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내가 이 나이에 이 곳에 와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가끔 들 때도 분명 있다. '한국에 내. 친구들은 지금 대리, 팀장, 과장에 얼마를 모았는데...' 하면서 말이다. 

너무나 안정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삶이 되려 부러울 때가 있다. 사람에 따라 옛 동료가, 오랜 친구들이 꽤 자주 부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목표와 미래를 위해 이민을 선택했다면 가장 버려야 하는 마음가짐이 바로 이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기로 결정하는 데 있어 본인의 나이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이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이민에 성공할 수 없다. 나 또한 이 곳에서 뒤늦게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했기 때문에 한국인인 내 선임이 나보다 5살이나 어렸지만, 퇴사한 지금까지도 연락할 때 존칭을 쓰며 말을 높일 정도로 일하는 기간 내내 내가 그녀를 언니로서 만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었는데, 나를 뽑을 때 회사에서 가장 걱정한 부분이 그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선임이 사적인 자리에서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한국에서 처럼 나이에 연연했다면 여기 와서 살겠다고 결정하면 안 되는 거죠. 한국 사회를 떠난 순간 그런 마음가짐도 버린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비행기 안에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버리고, 내려놓고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