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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쓰 Apr 01. 2024

회피형 불안장애 VS장기연애

우리 커플은 아직도 서로 정반대인 게 남아 있다. MBTI를 포함한 성격, 국적, 세대(나이), 성별(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식습관, 형제관계에 대해 글을 쓴 것 같은데 아직도 남아 있다니... 이 부분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점이다. 그는 잘 몰랐겠지만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달까... 일단 그는 나를 만나기 전 딱 한 번의 연애를 경험했다. 대신 그 연애가 7년의 장기 연애였다. 흔히들 이상형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상대방의 과거가 '1명을 7년 만난 연애 대 7명을 짧게 만난 연애'를 고르는 질문들을 종종 하곤 하는데 우리 사이가 딱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쓰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이유는 나의 과거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서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나는 3개월 이상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연애'라는 것을 진지하게 해 본 적도 없었다. 남들은 이해를 못 하며 '대체 왜?'라고 묻지만 그 이유를 난들 알까. 처음 한 두 번은 어쩌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이후 몇 번은 '내가 참 운이 없구나'라고 생각했고, 또 그 이후 몇 번은 '내가 문제일 수 있구나' 생각했고, 최근에 들어서야 그 문제가 뭔지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 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만 앞섰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나는 '회피형 불안장애(정확한 명칭이 아닌 것 같으나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음)'가 큰 사람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연애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이 문제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해 봤고, 이제는 나도 연애를 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애를 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포기했던 것 같다. 


남과 맺는 관계에 있어 굉장히 불안정한 나와는 달리 그는 굉장히 안정적인 사람이다. 관계뿐만 아니라 그는 정신적,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안정적이다. 나는 가끔 그의 부모님이 도대체 그를 어떻게 키웠을까 궁금할 정도로 안정적인데 친구들로부터 '너는 유리 멘털은커녕 비눗방울 멘털이다'라고 불릴 정도로 멘털이 약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나로서는 이게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어쩌면 자란 환경보다는 타고 태어난 성향이 달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무튼 그래서 진득한 성격의 그는 첫사랑과 7년을 연애했고, 그마저도(?) 상대방이 마지막에 힘들게 하고 결국 이별을 통보해 헤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라면 이런 경우 미련이 가득할 것 같은데 가끔 물어보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련이 없어 보인다. 이런 진득하고 진중하고 느린 성격의 장점 중 하나는 맺고 끝는게 분명하다는 데 있다. 


진지하고 오랜 연애 없이 짧고 다양한(?) 만남이 많았던 나의 과거와 달리 그의 과거는 지우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는 아직 그녀가 선물한 운동용 수건을 가지고 있고,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을 수도 있다. 한 번은 그의 지갑에서 그녀와 찍은 스티커사진을 발견하고 너무 놀란적이 있는데 그는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며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때는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건가' 싶어 놀랍고 화가 났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그냥 한 때의 추억인데 버린 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를 믿는다. 그리고 오직 그 덕분에 우리는 1년째 연애 중이다. 남들은, 특히 그 처럼 장기연애를 해본 사람에게 1년이란 시간은 짧겠지만 나에겐 처음 있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우리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연애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안정감이 최대한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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