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5개월 차 자발적 백수다.
주변에서 모두가 다른 데 구하면 그만두라며, 이직을 하라며 나를 말렸지만 나는 완강했다. 1월에 있을 공모전에 단막극이 아닌 장편을 써서 내보고 싶었다. 명색이 드라마 작가 지망생인데 시리즈물을 아이디어만 적어놓고 대본으로 쓴 게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단막극 10개 정도 썼으면 이제 슬슬 장편으로 넘어가 보자. 오히려 단막보다 장편이 쉽다던데 참신한 아이디어로 기똥찬 거 하나 써 보자!"라는 마음으로 퇴사를 했다. 현재 상황을 누가 물으면, 일단 공모전에 낼 작품은 쓰고 있다. 이대로라면 제출은 할 것 같다. 완성도는 모르겠지만. 더불어 여러 가지 다른 글도 많이 쓸 생각이었는데 그건 못 하고 있다. 다만 책도 매일 읽고, 요가 수업도 매일 가고, 일본어 공부도 매일 한다. 그리고 나는 내년 3월까지 이렇게 살 계획이다.
그러고 나면 포르투갈, 스페인을 갔다가 그리스, 이집트, 터키 3개국을 여행하고 다시 내가 사는 곳으로 올 계획이다. 3월 말부터 4월 말까지의 여행 일정. 이후에 9월 말에 한국과 일본을 다녀 올 생각이다. 내가 사는 집에 나 대신 임시로 거주할 사람을 찾으면 2-3달 정도 있다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럼 벌써 12월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나는 5월부터 9월까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건데 과연 그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2025년이 노답이라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모아놓은 돈이 아직 있으니 좀 더 일은 하지 않고 대신 더더욱 열심히 글을 써 보자. 브런치에 에세이 연재도 하나 더 하고, 웹소설도 투고하면 어떨까. 혹시 웹소설이 되면 약간의 수입이 생길 것이다. 그걸로 또 버티며 시나리오도 한 편 쓰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드라마 대본 공모전이 온다.
동시에 돈을 좋아하는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한다.
어차피 일을 안 한다고 하루종일 글만 쓰는 것도 아니고, 공모전 당선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사실 안 될 가능성이 더 큰데) 어린 나이도 아닌데 최소 2년을 일을 안 하고 논다? 제정신이야?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하고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모아서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갈 때 싸구려 숙소에서 숙박할 거 더 좋은 곳에서 자고, 한 끼라도 더 비싼 거 사드리고, 돈에 구애받지 않는 효도 여행을 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돈을 좋아하는 내가 '부모님'이라는 치트키를 쓴 순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큰 죄책감이 몰려온다. 특히 아빠는 아직도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하거나 새벽까지 일을 하다 퇴근을 하는데 나는 이렇게 게을러터졌다니. 작가로서의 나는 '부모님께 작가로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더 큰 효도다'라고 반박한다. 과연 뭐가 옳은 걸까. 내가 잠깐이라도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바로 일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나의 2025년은 노답이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이 결정한 데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불확실성을 사랑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내년에 뭘 할지 모르니까 더 설레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된다. 물론 나는 여전히 내적 갈등을 하며 나 자신과 싸우겠지만...
노답이라 어떤 답도 써 내려갈 수 있다. 모든 답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어찌 됐던 나는 최선을 다해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