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는 저를 양육 중입니다.

by 그래이스

얼마 전, 스레드에 배우 '진서연'님이 세바시 강연에서 한 말을 공유해서 보고 강연 영상을 찾아봤다.

'내가 나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는 내용에 공감이 갔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내 안에 내 자식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문장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내용이었다.


약 6-7년 전,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 열아홉에 갑자기 생긴 조울증 증상 때문에 힘들었고, 한 때 나도 인지하지 못 한 우울증 때문에 마치 좀비처럼 산 적도 있었고, 심지어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 시기가 현재로서는 최악이었다. 죽으려고 한 적은 없지만 죽지 못해 산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지옥 같았고, 단 한순간도 숨을 쉬며 이 땅에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은 망했고,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당장 내일도, 앞으로의 삶도 전혀 기대가 들지 않았고 내가 나인 게 몸서리치게 싫었다. 어린 시절에 생긴 나의 결핍과 나의 정신적 문제, 몸에 세로토닌 수치가 낮은 신체적 문제, 내가 원했던 성공한 삶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나의 상황.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꼼짝없이 갇혀 점점 아래로 빠져 내려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나는 7살의 나를 만났다. 크면 엄청 유명하고,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고,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는 나를 말이다. 나는 나에게 "네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진 못 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자 7살의 나는 나에게 그럴 수도 있다는 듯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난 "괜찮아?"라고 되물었다. 내 생각에 나는 괜찮을 리 없었다. 아니 나는 괜찮지 않았다. 전혀.

7살의 내가 "응. 그럴 수도 있지."라고 다시 나에게 말해 준 순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맞아. 괜찮은 거였어.'

그리고 난 7살의 내게 말했다. "네가 지금 생각하는 그런 삶은 아닐 거야. 하지만 나름 괜찮았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좋았어."

7살의 나는 행복해 보였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엄청난 사람이 될 거라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정작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했는데도 상관없어 보였다. 잠에서 깬 나는 이게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모르게 펑펑 울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열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실 그 꿈을 꾼 이후에도 한 동안 우울증 약을 먹었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몇 년째 7살의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나거나 우울해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너 왜 그래?' 이러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 왜 이러지? 뭐가 나를 짜증 나게 만들었지? 이유가 있나? 없나? 그럼 내가 지금 뭘 해야 기분이 풀릴까?'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누구보다도, 심지어 부모님 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난 나 자신을 자식처럼 돌보며 살고 있다. 내 새끼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입히고 싶은 마음. 좋은 생각만 하고 행복했으면 바라는 마음. 내 안에는 순수한 7살 어린이도, 한창 꿈 많던 15살 청소년도, 처음 좌절을 겪고 세상에 대해 배웠던 20대 초반의 나도, 처음 캐나다에 와서 신나게 즐기던 20대 중반의 나도 전부 있다. 나 자신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말이 싫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