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드의숲 Mar 15. 2019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2

미세먼지만도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

그때 마침 사이렌 소리가 창 밖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그를 객실에서 앰뷸런스로 옮기고는 인공호흡기를 착용시켰다. 

나도 함께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병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앰뷸런스는 도로 위를 맹수같이 달려 나갔다. 그런데 병원에 다다를 즈음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이 급박한 상황에 고장이라도 난 건지 나는 차 앞면 창을 내다봤다. 그런데 고장이 아니었다. 병원 입구로 향하는 길목에 다다를 즈음 서너 대의 차량이 앞을 가로막고는 느릿느릿 기어가는 게 보였다.


 사이렌 소리가 도로 사이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데도 눈 앞의 차들은 꿈쩍 않고 차례대로 줄지어 움직였다. 왕복 2차선이지만 언뜻 봐도 오른쪽 갓길이 군데군데 비어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비켜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느긋하게 자기 자리를 고집했다. 이 상황을 외면해버리는 운전자들의 무심함과 이기심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을 코 앞에 두고도 못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나는 감정이 울컥해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구급대원이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구급 상황입니다. 우측으로 피해 주세요!"


소용없는 일이었다. 

구급대원 운전사는 결국 신호가 걸린 틈을 타 반대편 차선으로 역주행을 해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애태워가며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고객을 재빨리 응급실로 옮겼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좀 전까지 숨을 잘 쉬지 못하고 발작증세를 보였던 그는 구급대원과 의료진의 빠른 응급처치로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듯 보였다. 의료진에게 상황설명을 마치고 나도 그들을 따라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


"아니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지나가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양보할 생각들을 안 해요?"


듣고 있던 구급대원이 말했다.


"흔한 일입니다. 다들 제 갈 길 바빠서 양보 같은 건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옆에 있던 구급대원도 볼멘소리로 거들었다


"아이고 가끔은 구급차를 추월도 하는데요 뭘! 쌩쌩 달리고 있는데 그렇게 갑자기 끼어들면 얼마나 놀라는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니까요."


"얼마 전엔 옆 차에서 황당한 소리까지 들었어요. 꽉 막힌 도로에서 비켜달라고 경적을 울리며 마이크로 얘기했더니 진짜 환자 싣고 가는 거 맞냐면서 화를 내더라니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생명을 싣고 다니는 구급차들 아닌가. 정작 그들은 타인을 향한 바늘구멍만큼의 배려심도 없는 것인가. 구급차에 탈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미세먼지만도 못한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기조차 싫었다.


문득 작년 여름 일본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렌터카를 빌려 왕복 4차선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앞에 있던 차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서 양 옆으로 차를 바짝 빼며 정차하기 시작했다. 홍해 바다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처럼 차들 사이로 없던 길 하나가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뒤에서 달려오던 엠블런스는 그 길을 따라 안전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빠르게 달려 나가는 일본의 구급차를 생각하니 그 순간 부러움과 부끄러움 두 가지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압축성장의 쾌거를 이루어냈다고 언제까지 한가하게 다이내믹 코리아를 부르짖고 있을 것인가. 흔히 '성장은 압축할 수 있지만 성숙은 압축할 수 없다'고들 한다. 몸이 컸다고 해서 십 대들을 어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과 같은 얘기다. 소실된 내면의 성장, 즉 성숙의 시간이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자판기에서 2객의 음료수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구급대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음료수를 전하고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고객은 검사 중이라 자리에 없었다.

의료진 중 한 명에게 물으니 발작 원인이 협심증이라고 했다. 

그제야 얼마 전에 돌아가신 이모부 생각이 나며 그가 호텔 바닥에서 보였던 행동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협심증의 일반적인 증상으로는 갑작스럽게 가슴에 압박이 오고 불에 달군 꼬챙이로 심장을 쿡쿡 찌르는 듯 한 통증이 시작되면서 숨이 막힐 듯한 고통이 시작된다고 한다. 대부분 환자들은 심한 통증에 가슴을 쥐어 뜯기도 하며 호흡곤란과 함께 공포가 찾아와 의식을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가 물건들을 집어던진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호흡곤란 인해 두려웠던 것이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물건을 던지는 소리로 주위에 자신의 위급함을 알렸던 것이다. 집에서 돌아가셨던 이모부도 주위에 물건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는 이모의 말이 기억났다.


의료진이 말하길 그 고객은 일본으로 건너가 아마도 심장 스텐트 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새벽 4시가 다 돼서야 고객을 모시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는 내게 감사를 표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고된 야간근무에 보람이 한 아름 안겨지는 밤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날 바로 체크아웃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 달이 지날 무렵 그에게서 작은 우편물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그곳엔 그의 필체가 담긴 편지에 거듭 고맙다는 내용과 함께 정성스레 포장한 고가의 파커 볼펜이 함께 들어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