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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희 Jul 18. 2022

잠겨 죽어도 좋으니. 헤어질 결심. 2022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던 순간, 당신이 느낀 그 순간의 날씨는 어땠는가.



누군가에는 그날이 바삭한 햇볕이 내리쬐는 부드럽고 따스한 날과 같았을 수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번개를 맞은 날과 같았을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과 같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뿌연 안갯속을 거니는 것 같은 사랑도 있지 않겠는가.





오늘 리뷰할 영화



안개 같은 의심과 깊어지는 관심 속, 사랑할 결심과 헤어질 결심이 뒤섞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이다.

헤어질 결심 포스터

정말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영화였음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영화관에 갈 시간이 날만을 기다리며 흥행 성적을 지켜봤지만 생각보다 성적이 부진해서 좀 의아했다.


최근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역시 오랜 시간 기다렸던 영화였지만 내 기준에선 많이 아쉬웠기에, 혹시 <헤어질 결심>도 그런 건가 싶었지만...



영화를 보고 오니 역시 괜한 생각이었구나 싶었다.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박찬욱 감독 영화 퀄리티 걱정을 한 내가 우습다.



그저 부디 입소문이 더 나고, 더 더 나서 지금보다 관객 수가 늘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박찬욱 감독이 또 투자를 받고, 또 이런 영화를 만들 힘이 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훌륭한 감독이 있는데 흥행 성적때문에 또 이만큼의 퀄리티를 가진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사실 <헤어질 결심> 같은 경우는 보고 느낀 것도 너무 많고 계속 감탄하면서 본 영화이기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 너무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남겨 놓았으니, 굳이 블로그에 글을 안 남기려고 했는데 한 명이라도 더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 글을 끄적인다.

(그러니까 다들 영화관 가서 봐주세요.)




총 별점: ★★★★★





~여기서부턴 스포 천국~






1. 장르의 결합


먼저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헤어질 결심>은 로맨스와 스릴러가 결합된 영화다.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참고해 보면, 스릴러의 틀로 사랑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잘 나와있다. 전반적으로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이 로맨스에 입혀지니 긴장감이 깨지지 않는 채로 영화가 진행된다.



사랑하는 관계에 의심이 개입하면 좀 더 드라마틱 해지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만나 연애해도 의심할 수 있지만 용의자와 형사로 만났을 때의 의심과는 비교할 수 없겠죠.

-씨네 21 김혜리 기자의 박찬욱 감독 인터뷰 중 감독의 말


대학교에서 만난 평범한 선배와 썸을 타도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맞나, 아닌가 하는 의심에 잠 못 이루곤 하지 않는가. 이 감정은 너무나 강렬해서, 2014년 '썸'이라는 노래가 대히트를 하며 고유명사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런 의심과 연애 감정이 섞인 관심이 뒤엉켜 전개되는 이 영화는 보통의 로맨스 영화보다 한 층 더 밀도 높은 의심을 전제한다. 주인공 두 명에게 형사와 살인 용의자라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의심을 전제로 만나게 되는 특이한 역할 덕분에 이들의 연애는 의심 증폭기 속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영화의 초반은 남자 주인공인 해준의 시선을 따라간다. 우리 관객들도 함께 '형사'인 해준의 시선을 통해 '살인 용의자'인 서래를 의심하고 심문한다. 이런 스릴러의 법칙 속 영화가 전개되다 보니 관객 역시 서래를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애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인 두 인물의 감정선에 깊이 집중하게 된다. 그렇기에 의심과 심문이라는 다소 폭력적인 행위가 <헤어질 결심>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중 하나인 대화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스릴러의 옷을 입은 영화가 인물들의 감정선을 훌륭하게 풀어내면서 우아한 로맨스 영화로 귀결된다.


때문에 이 영화는 감상 후 다양한 해석본을 찾아보며 변태적인 박찬욱 감독의 디테일을 음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해준과 서래의 감정선을 짚어가며 로맨스릴러 영화의 매력을 물씬 느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은 감상 방법이다.







2. 송서래와 박해준, 그리고 산오.


송서래 역의 배우 탕웨이 / 박해준 역의 배우 박해일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캐스팅이 큰 화제에 올랐었다. 우리나라 남자배우로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박해일과 멜로 영화에 최적화된 배우라는 평을 듣는 탕웨이의 캐스팅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이 두 배우는 품위 있는 형사 박해준과 꼿꼿한 살인 용의자 송서래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박해준과 송서래는 서로의 공통점을 알아가며 점차 사랑에 빠진다. 둘은 '말씀'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것보다 사진을 통해 사건을 보는 것을 선호하고, 어진 사람이 좋아한다는 산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 좋아한다는 바다를 좋아하고, 같은 아이폰을 쓰고, 결핍되어 있는 부분이 있고, 꼿꼿하고 품위 있다.



두 사람은 서로가 결핍되어 있는 부분을 채워주며 점점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해준에게 필요한 것은 '잠'이다. 해준이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영화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묘사되는데 반해, 영화를 대표하는 포스터 속의 해준은 서래와 손을 닿은 상태로 잠에 들어 있다. 그만큼 해준이 서래의 곁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묘사된다. 서래는 서로의 호흡을 공유하는 방법을 통해 해준이 단잠을 잘 수 있도록 돕는데, 이 장면이 박찬욱 감독의 전작 <아가씨>에서 숙희가 아가씨의 치아를 갈아주던 장면처럼 묘하게 에로틱하게 묘사된다. 격정적인 장면 없이도 두 사람의 사랑을 훌륭하게 보여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준에게 있어서 숙면을 도움받는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평범해 보였던 포스터가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 보면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으로 다시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해준 역시 서래에게 필요한 식사, 안전 등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해준이 서래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해준은 서래를 잠복 조사한다는 핑계로 서래를 훔쳐본다. 어찌나 열중해서 훔쳐보는지 해준은 서래를 보며 해설을 하고, 심지어 연출적으로도 해준이 실제로 서래의 집 안에 들어와있는 것처럼 보이는 연출 방법을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해준은 서래가 죽은 새를 묻어주기 위해 초록색으로도 보이고 파란색으로도 보이는 양동이로 흙을 파며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달라"라고 하는 서래의 고백 비스름한 말까지 듣게 된다. 어찌 보면 관음증 환자 혹은 스토커처럼 보이는 해준의 모습이 서래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불쾌해하기는커녕 해준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며, 아침에 차 안에서 자고 있는 해준에게 인사까지 하는 여유를 보인다.


'지켜본다'라는 행위가 해준에게는 서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서래에게는 해준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결국 이들에게는 이 잠복근무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이 이렇게 보통의(?) 썸을 통해 알콩달콩 연애에 골인하느냐. 물론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건 기대도 안 했다.


해준은 서래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품위를 이루는 요소인 직업적 자부심을 버리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 심정을 서래에게 '붕괴'라는 표현을 통해 묘사한다. 서래는 썰물 때 양동이로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 있다가 밀려오는 물에 잠겨 죽는다. 미결 사건의 끔찍한 사진들을 한 쪽 벽면에 붙여 놓고 계속해서 그 사진들을 보고 곱씹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해준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서래는 구덩이를 파 자살함으로써 해준 곁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결국 해준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붕괴했고, 서래는 미결 사건으로 남는 것을 택했다.




이 둘을 은근하고 묘하게 결합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인물은 '질곡동 사건'의 진범 산오이다. 산오는 해준과 대치하며 자신의 살해 동기가 '사랑'이었음을 밝히고 가위로 자신의 목을 찔러 투신해 '붕괴'하는 인물이다.


서래는 고통 속에 죽어가는 엄마에게 펜타닐을 먹여 영원한 안식을 선물했다. 자신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남편 기도수를 죽였다. 해준을 다시 만나기 위해 철성의 어머니를 죽였다. 마지막으로, 해준이 영원히 자신을 생각할 수 있도록 자살했다. 해준 역시 자신의 품위를 이루는 요소인 직업적 자부심을 붕괴하면서까지 서래를 지킨다. '붕괴'는 결국 해준의 사랑의 형태였고 그것을 서래는 알아보았다.


이 둘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를 묘하게 결합해 놓은 산오. 이 인물이 영화 초반에 등장했을 때부터, 박찬욱의 영화이니 그저 지나가는 인물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고 두 사람의 사랑의 진행 방향이 보일수록 산오라는 인물을 계속 곱씹게 된다.





3. 안개


안개는 <헤어질 결심>의 중요한 모티브다.


정훈희의 <안개>가 영화 속에서 자주 재생되기도 하고, 영화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며 위치적 배경 역시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도시인 '이포'로 옮겨가는 것만 봐도 안개가 중요한 모티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정훈희의 <안개>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였다고 하니 안개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덕분에 영화의 분위기 역시 안개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반영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부옇고 모호하며 축축한 분위기.



영화를 곱씹고 있노라면 안개의 특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안개. 안개는 눈을 뜨고 있음에도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하게 만든다. 저것이 산인지 바다인지, 파란색인지 초록색인지, 이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때문에 <헤어질 결심>을 감상하고 있으면, 영화 전반에 걸쳐 대척점에 있는 개념들이 마구 뒤섞여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갈 때면 꼭 주목하는 포인트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벽지이다. 소문난 벽지 변태이니 만큼 이번에는 과연 어떤 벽지를 사용했을까 궁금했는데, 이번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벽지는 서래 집의 푸른색 벽지였다. 산으로도 보이고 바다로도 보이는 이 벽지는 안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미장센 요소이다.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산과 바다는 사람의 목숨이 끝나는 곳으로도(산에서 기도수가 사망하고 바다에서는 서래가 자살한다.),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는 곳(서래는 산 위에서 해준을 안으며 사랑을 표현하고 해준은 서래가 자살한 바닷가에서 사랑을 재확인한다.)으로도 기능한다. 이처럼 이중적 기능을 하는 산과 바다의 경계를 안개가 풀어헤치는 듯하다.



박찬욱 감독과 같은 거장의 영화를 볼 때면 내용과 형식의 일치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다. 안갯속을 거니는 듯한 사랑을 묘사하는데 실제 안개로 뒤덮인 환경과 벽지, 그리고 음악 등으로 풀어낸 지점이 박찬욱 감독다워서 좋다.






4. 밀려오는 사랑과 헤어질 결심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사랑이 찾아오는 과정은 불가항력적이다. 원치 않아도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이 사랑이다. 한순간의 눈 맞춤, 하나의 공통점, 새로운 매력.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 사랑은 사랑할 결심 없이 피어난다.


하지만 헤어지는 것에는 결심이 필요하다. 이별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 애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별을 고할 것인지, 어떻게 마음을 정리할 것인지 결심해야 할 거리가 많다.



서래와 해준 역시 속절없이 사랑에 빠진다. 남편을 살해하고 마음속 빈틈 하나 없어 보이는 서래도, 번듯한 가정이 있는 해준도 서로를 사랑할 결심을 가지고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대화와 관찰로 이어진 관심은 그들을 사랑이라는 범주 안에 들여놓았다.



하지만 해준은 결국 서래가 기도수 사망사건의 진범임을 밝히는 증거를 찾아내고, 서래를 지키기 위해 증거물을 바다에 은폐하길 결정한다. 앞서 언급했듯, 해준은 '붕괴'라는 단어를 통해 서래에게 자신의 헤어질 결심을 내비친다. 하지만 그 결심은 서래에게 자신을 향한 사랑 고백이나 다름없었고, 그 순간 서래의 사랑은 더 진득하게 피어오른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일부를 희생하기로 한 해준의 결정이 서래에게는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해준 역시 서래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부산을 떠나 이포에서 다시 만나게 된 서래를 보며 깊은 감정의 동요를 느끼던 해준이 자신이 진정 서래를 사랑함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은 서래가 자살하는 순간이다. 서래의 헤어질 결심의 결과물인 자살은 육체적으론 영원히 헤어지는 것일지언정, 결국 사랑하는 해준의 곁에 영원히 남아 있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특히 이 신은 시각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밀려오는 사랑에 잠겨 죽어도 좋다는 듯 파도를 맞는 서래의 모습엔 강한 '결심'없이는 보이기 힘든 꼿꼿함이 비친다. 의연하고 담담해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처연해보이는 서래의 모습은 영화 초반에 나왔던 죽은 새를 연상케한다. 서래는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렴"이라는 고백과 함께 죽은 새를 묻어주었는데, 마치 그 새는 서래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바치는 제물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가 후반부로 흘러가며 서래는 새를 묻었을 때 썼던 양동이로 흙을 파 자신의 몸뚱이를 뉘인 채,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서래는 자신의 자살이 해준에게 영원한 미결로 남아, 해준이 평생 자신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걸, 해준을 너무 사랑했기에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사랑의 형태였다.



이처럼 <헤어질 결심>에서는 사랑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보이는 '붕괴'와 '자살'을 끌어들임으로써, 사랑을 재해석한다. 사랑이 결국 헤어질 결심으로 증명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대척점에 있는 두 개의 개념이 뒤섞여 혼탁한 안개처럼 보이게 되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나는 영화가 끝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5. 현시대의 사랑


박찬욱 감독은 이전에도 아이폰으로 찍은 단편 영화인 <일장춘몽>을 세상에 내놓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t7Xblc9yJE






이 작품만 봐도 박찬욱 감독은 세계가 변해가는 흐름에 잘 맞춰 작품을 내놓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영화에서 그런 특성이 극대화되어 보인다. 사건의 중요한 증거물은 디지털 기기의 데이터들이고, 서래와 해준은 애플워치를 이용해 녹음을 하며, 노래 <안개>는 시리를 이용해서 튼다(오죽하면, 영화 감상 전에 '시리'를 끄고 들어가라는 소문이 퍼졌다. 근데 진짜 끄고 들어가세요ㅋㅋㅋ). 여러 부분에서 현대 시대를 상징하는 디지털 기술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지만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역시 통역 앱을 사용하는 부분이 아닐까.



중국 여성인 서래는 한국말로 대부분의 소통이 가능하지만 인용문을 언급하거나 자신의 진심을 전할 때는 통역 앱을 사용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서래가 하는 중요한 말을 중국어로 한 번, 통역 앱으로 한 번, 총 두 번을 듣게 된다. 낭랑하게 녹음된 통역 앱의 목소리는 오히려 서래가 하는 말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관객 입장에서도 과연 저 중국어가 제대로 해석이 되어 나올지, 서래가 중국어로 무슨 말을 한 건지, 불안감과 궁금함을 가지고 대사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통역 앱은 영화의 집중도를 올리는 기능적인 면도 충실하게 수행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통역 앱을 고작 이 정도로 단순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배운 변태 박찬욱 감독은 통역 앱의 목소리를 남성의 목소리로 설정해 놓았다가, 호미산에서만큼은 여성의 목소리를 사용한다. 인터뷰를 보니 이것조차도 의도했던 거라고 한다.(박찬욱 당신은 정말...)




현시대의 사랑을 생각하면 내게는 가벼워 보이는 면이 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내용을 담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와 재생산되는 와중에 박찬욱 감독은 영화에 문어체 표현을 써서 무게감을 더한다. 현시대의 사랑의 형태를 디지털 기기들을 통해 센스 있게 그려내면서도, 현시대의 사랑을 역행하는 듯이 보이는 문학적 아름다움이 이 영화를 더 훌륭하기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 절정에 다다른 표현이 바로 '마침내'가 아닐까.



영화에서 '마침내'는 '그러다가 결국'이라는 뜻으로 처음 쓰이고 서래가 잠결에 우는 장면에서 '이제야'처럼 쓰이다가 결말에 이르러 '기어이'의 뜻을 품게 됩니다

-씨네 21 김혜리 기자의 박찬욱 감독 인터뷰 중 기자의 말



이렇게 문학적인 로맨스 영화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더 마음이 울렸던 것 같기도 하다. 대사에 큰 노력을 쏟아부은 티가 나고, 그 대사를 배우들이 훌륭하게 연기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화의 전체적인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졌달까.







여기까지, <헤어질 결심> 리뷰를 써보았다.


예상보다 너무 길게 써지기도 했고 블로그에는 처음 올리는 영화 리뷰인지라 누가 읽을 것 같지도 않지만, 나라도 이 영화를 곱씹고 곱씹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워낙에 디테일을 잘 챙기는 감독이다 보니

유튜브나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고 있는데

그런 콘텐츠들을 참고해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N차 관람객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더 많이 흥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한 박찬욱 감독 인터뷰 링크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0563







얼른 또 재밌는 영화 개봉해라...


영화관 달려가게~!~!










헤어질 결심

감독박찬욱출연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개봉2022.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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