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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잇 Nov 02. 2023

캐나다에서의 단상 | 취미를 가진다는 것

인생 워킹 홀리데이 중인 캐나다 워홀러의 삶

지난 이십여 년 간 나의 삶은 정말 재미없기 짝이 없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한 삶에 가까웠다.

취미란 사치였고, 풍족함이란 남의 이야기만 같았던 나의 삶.

이십 대 초반, 꿈에 그리던 직업을 갖고, 물리적 독립과 경제적 반 독립을 이뤄낸 나는

이후에도 줄곧 취미란 그저 시간과 돈이 여유로운 자들이 하는 행위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게나 재미없는 삶을 살던 내가,

이십 대 초반 떠난 해외여행에서 처음으로 돈을 쓰는 재미를 알았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빴던 부모님의 팍팍한 삶을 보고 자란 내게

돈이란 ‘쓰는 것’보다 ‘버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다.


줄곧 돈의 무거움에 짓눌려 살던 내게 첫 해외여행은 해방감을 안겨주었고,

더 나아가 돈을 버는 이유이자 목적이 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돈이 모이면 무작정 해외로 떠났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난 몇 년을 제외하면

나는 열심히 모은 돈을 털어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실체 없는 경험이 주는 값어치에 크게 매료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흘렀을까.

마침내 나는 경험의 매력에 홀려 캐나다로 향했다.

캐나다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캐나다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상상만 하던 내가,

한 달 반 여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어학연수라는 핑계 아래 무작정 꿈에만 그리던 땅을 향해 날아올랐다.


처음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으로써 삶을 살아갈 지구 반대편 이방의 나라.

이방의 나라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방인들은

내게 신선한 호기심과 흥미를 안겨 주었다.


3개월의 어학연수, 그리고 비행기를 미뤄가며 보낸 5주간의 캐나다 살이까지.

약 4개월 반 남짓한 삶을 캐나다에서 살며

이곳에 다시 돌아오겠노라 나 자신과 기약 없는 약속을 맺었더랬다.


그렇게 또다시 한국에 돌아와 4개월이 흘렀다.

나는 그 사이 다시 캐나다로 출국할 준비를 끝냈고,

마침내,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손에 쥐고

그리던 캐나다 땅을 다시 밟았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한 달이 지났다.

파트타임이지만 레스토랑 서버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가을이 가기 전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며

캐나다에서의 삶에 다시금 적응을 마쳤다.


모든 게 평온해진 일상 속,

문득 취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여 년 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취미를 가져본 적 없는 내가,

평온함에 몸부림치며 직접 취미를 찾아 나서다니.


캐나다로 오기 전 ‘캐나다에서만큼은 당장 내일 걱정 없이 오늘만 생각하며 살아야지‘ 다짐했다.

그런 마음가짐에서였을까.

일을 하지 않는 여유 시간을 영어 공부에 전념하는 대신

내 삶을 위한 무언가로 채워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오늘, 처음으로 취미를 위한 쇼핑에 나섰다.

내가 택한 첫 번째 취미는 바로 ‘홈 베이킹’.

손재주도, 빵이나 쿠키 따위에는 관심도 없던 내가 홈 베이킹에 뛰어들다니.

평소 가성비를 외치며 돈이 되지 않는 것들, 돈을 써야만 하는 것들을 멀리하며 살아온 내게 불어닥친 큰 변화였다.


몇 가지의 베이킹 장비를 결제하며,

잠시 후회스러운 마음이 앞서기도 했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카드를 바라보며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평소에 관심 없던, 또는 재주가 없어 내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 속단했던 것들에 도전하는 값이라 생각하자’…

그 와중에도 지불한 값에 대한 미련을 채 져버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멋쩍어하며 여차저차 결제를 마쳤다.

구매한 장비를 들고 돌아오는 길,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졌다.

이까짓 게 뭐라고. 그저 눈 딱 감고 결제하고, 도전해 보고, 아니면 말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런 사소한 것조차 해보고 살지 않은 삶이

어쩐지 초라하고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아직 장비를 제외한 그 무엇도 구매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갈 곳을 잃은 베이킹 장비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테이블 한 편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의 선택에 만족한다.

 

늘 해보지 않은 것들은 피하고, 지레 겁먹고,

도전할 생각조차 안 하던 나였기에.

나를 위해 구매한 저 작고 부질없는 무언가가,

언제고 다시 무너질지 모를 나의 작은 용기가,

기특하고 또 반갑다.


비록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애꿎은 나의 손을 탓하며 후회할지라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겁먹지 않고 하나씩 도전해 보는 삶을 살아보자.

나는 그저,

지구 반대편 이방의 나라에 온 어느 이방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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