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그래퍼 May 06. 2020

런던의 여섯 번째 조각 [YOU]

                      


 롭게 일을 시작한 이래로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러 가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지친 하루의 일과를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지워버리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였으나, 언제부터인가 같이 일하는 팀 리더를 험담하기 위한(?) 모임으로 변모되어 갔다. 그리고 그 장소는 열에 아홉이 스타벅스, 정확히는 옥스퍼드와 피카딜리 사이로 곧게 뻗은 리젠트 스트릿의 한줄기 골목에 자리 잡은 매장이었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3번 이 매장에 들렀다. 

 중심가에 위치한 매장 인터라 항상 좌석이 부족하기에 동료들과 나는 매장의 좌석부터 확보를 하고, 서로 돌아가며 주문을 하는 편이었다. 하루는 내가 한동안 잠을 편하게 청하지 못할 정도로 걱정했던 문제가 그동안의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원만하게 해결되어 그것을 축하, 기념하기 위해 동료들에게 커피를 사기로 한 적이 있었다. 모두의 주문을 가지고 Ground Floor로 내려갔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길게 사람들을 늘어트리고 있는 캐셔. 그런 고객들의 '니즈'를 발 빠르게 해결해주고픈 점원들은 고객들이 계산을 하기 전에 그들의 음료를 주문 받음으로써, 고객들이 웨이팅 하는 시간을 줄여주곤 했다. 

 이날 역시도 점원중 한 명이 줄을 서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 줄까?" 

  "사실 난 주문할게 좀 많아" 

 "괜찮아 말해~" 

  "그럼 카페라떼, 아이스 바닐라 라떼, 카푸치노, 아이스 모카라떼 줄래?" 

 "당연하지, 다른 건??" 

  "아참! 물 한 컵도 줄래?" 

 "물론!"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런던 대부분의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주문 시 점원이 고객의 이름을 묻고는 커피에 고객의 이름을 적어주곤 한다. 불행하게도 내 이름은 이들의 발음 구조로 정확히 발음을 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스펠 역시 정확히 적어주는 외국인을 주문 시 본 적이 없었기에 런던에 적응을 하던 초창기 시절 이외에는 항상 내 성인 "유"를 점원에게 알려주곤 하였다. 그리고 내가 '유'라는 음절을 그들에게 내뱉었을 때의 반응은 참으로 다양하고 재미있다. 


 "니 이름 참 쉬워서 좋다"라고 말하는 점원이 대부분이다.  

 한 번은 Yu, 그리고 La라고 적은 종이컵을 캐셔가 바리스타에게 넘겨주자, 바리스타는 캐셔에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캐셔는 바리스타에게 Latte for Yu who are in front of YOU라고 대답하였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리스타는 종이컵의 이름과 내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한바탕 크게 웃고 커피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이날도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게 내 주문을 모두 받아낸 점원이 내 이름을 물어보았다. 


 "이름이 뭐야?" 

  "유!" 


 그러자 점원은 온화한 미소로  

 "내 이름이 너의 이름은 아닐 텐데?"라고 기분 좋은 농담을 날려 주었다. 그리고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너 한국에서 왔어?"라고 물었다. '유'라는 이름만 들었으면 일본인 느낌이 더 강했을법한데, 이 점원은 정확히 나의 국적을 맞추었다. 점원은 YOU라 적힌 컵홀더를 커피머신 앞에 있는 바리스타에게 전해주었다. 

 바리스타 앞에서 몇십 초의 시간이 흘렀을 때, 내게서 주문을 받아간 점원이 외쳤다.  

 "Latte for you" 점원의 목소리가 매장을 채우자 손님들이 일제히 점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점원은 자신이 쥐고 있던 컵을 선반에 내려놓으며 YOU 라고 적힌 부분이 손님들에게 잘 보이도록 돌려놓았다. 군중 속에 섞여 있었던 나는 조심스레 YOU가 적힌 라떼를 집어 들었다. 몇몇 점원들이 피식하며 웃었다. 몇 초가 흐른 후, 이번에는 다른 여자 점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This one is a Cappucino for YOU" 그리고 또 이름이 적힌 부분을 손님 쪽으로 돌려놓았다. 나는 다시 한번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몇몇 손님들이 상황을 이해한 듯 웃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 외침이 매장을 흔들었다. "Another one for you" 웃음에 전이된 사람이 조금 늘어난 듯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외침. "Last one for you" 

 마지막 You 가 불려졌을 때는 그 한 음절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 마냥 매장이 웃음으로 가득하였다. 나와 함께 주문을 하러 내려왔던 같은 직장의 동생마저도.

 

 런던 생활이 9개월 차에 들어서는 나는, 이제 내 이름으로도 사람들을 웃기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You(당신들을)를 즐겁게 하는 런던의 살고 있는, 그리고 런던을 이루는 한 조각의 YOO 이다!                                               

작가의 이전글 [비 오는 10월의 브릭레인 - 힐링이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