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가에 서 있던 네 살 아이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
유리가 깨진 줄도 몰랐다.
욕실에서 아이들끼리 잘 놀고 있기에 그런 줄만 알았다.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궁금해서 가봤더니
멈칫하는 품새가 어째 이상하다.
난처해하는 아이들의 표정.
뭔가 불길한 이 느낌.
둘째는 손을 뒤로 하고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조그마한 손에 들린 바가지에는 깨진 유리볼 조각들이 들어있었다.
이 산산조각 난 유리 조각을 아이들이 맨손으로 집었을 생각을 하니
온몸에 털이 쭈뼛 섰다.
설마 유리 조각을 밟지는 않았겠지.
얼른 아이들의 손과 발을 살폈다.
일단 아이들을 거실에 앉혀놓고 깨진 유리볼 조각을 정리했다.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이 유리볼을 좋아하는지.
매일 쓰지도 못하고 가끔 기분전환할 때,
예쁘게 먹고 싶을 때 조심스레 꺼내어 과일이나 디저트를 담아냈던걸.
그때마다 엄마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평소의 엄마라면 분명 난리가 날 게 뻔했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렇게 좋아하고 아끼는 물건을 깨뜨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
욕실 바닥에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을 치우면서
내 마음은 여주 남한강에 가 있었다.
아빠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 집에
온 가족이 초대받은 날이었다.
그날 나는 실수로 그 집에 있는 도자기를 깨뜨렸다고 한다.
엄마는 너무나 미안하고 창피해서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우리들을 잡아끌고 나왔다고 한다.
아마 나는 뭔가 잘못한 것 같긴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다.
엄마는 4살 된 나를 강가로 데리고 가며 창피해 죽겠다고,
같이 죽자고 했단다.
4살 아이가 뭘 알았을까.
엄마가 그래야 한다니까 그래야 하나보다 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강둑에서 아래로 가더란다.
엄마는 그 모습에 기가 막혔고,
스스로 한 말이 있으니 이리 오라고 말도 못 하고.
그러다 엄마는 겁을 준다고 나를 잡아 흔들었고,
그제야 나는 왕 울음을 터뜨렸다는 그런 이야기.
나는 기억이 없지만,
자라면서 수차례 들었던 에피소드다.
엄마가 하도 많이 얘기해서 마치 너무 자주 본 영화처럼 강가의 풍경이 그려진다.
아이들이 유리볼을 깨뜨렸을 때 남한 강변의 나를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끌어올렸을 것이다.
그때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다친 데는 없니? 괜찮니? 많이 놀랐지?
괜찮아. 깨진 물건은 새로 사면 되고,
깨뜨려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겁먹은 표정으로 나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에게
나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정말 괜찮다고.
평소에도 일관되게 이런 태도였다면
아이들은 아마 이렇게 숨기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여전히 무언가를 쏟고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하다.
이렇게 위험한 순간,
무의식이 불러온 남한강의 4살 꼬마 덕분에
아이들에게 평소에는 잘해주지 못했던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굳은 표정을 풀고 아픈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살짝 베인 곳을 소독하고 약을 발라 밴드를 붙여주고
‘호-’도 잊지 않았다.
상처로 남은 말도 그렇게 후처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알코올 솜으로 깨끗이 닦아내고
따뜻한 말로 안정시키고
포근한 밴드로 감싸 안아주면 좋겠다.
강변에 서 있는 4살 적 나에게 이야기하듯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엄마의 마음이 그 당시 어땠을지는 알 수 없다.
지나고 난 뒤 재미있는 에피소드처럼 여러 번 이야기하시는 걸로 보아
엄마에게 그리 큰 상처가 된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 됐지.
엄마가 그 일로 자책하거나 괴로워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좋은 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불같이 화를 냈던 엄마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 기억으로 나는
아이들에게 좀 더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었으니까.
남한강의 4살 나에게,
4살 엄마에게 고맙다.
바람이 있다면
이제 그만 강가에서 올라와 따뜻한 집으로 가서
못 먹은 저녁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영화 필름을 돌리듯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