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58)
(사진-중국의 한 양봉업자가 40만 마리의 꿀벌 옷을 입고 있는 모습)
내가 김팀장님과 강서소방서 S안전센터에서 근무하던 2011년쯤의 일인 것 같다. 벌들이 분봉-꿀벌류의 무리에서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새로운 여왕벌의 출현에 따라 약 반수의 일벌이 옛 여왕벌과 함께 집을 나와 다른 곳에 다시 벌집을 짓는 현상(다음 백과사전)-을 하는 이맘때였던 것 같다. 벌들이 한 나무에 가득 모여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보니 장소는 어린이 놀이터였다. 놀이터 미끄럼틀 옆에 있는 나무에 꿀벌들이 축구공 모양으로 새카맣게 붙어 있었다. 신고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들 노는데 이렇게 많은 벌들이 모여 있으니 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고를 한 것이란다.
내 후임인 이반장은 벌이라면 다 같은 벌인 줄 알고 살충제와 토치를 꺼내 들고 말벌 보호복을 입으려고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꿀벌과 말벌의 구분은 없었고 벌이면 모두 민원인의 안전을 위해 태워(?)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꿀벌이 점점 줄어들어서 꿀벌 구조 신고가 들어오면 직접 나가지 않고 양봉업자에게 연결해서 그들이 꿀벌을 처리해서(?) 모아가도록 하고 있다. 연락하면 그들도 얼씨구나 하면서 와서 가지고 간다. 그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모자란 벌들을 보충할 수 있어서 서로 윈윈 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뀐 것은 꿀벌이 자꾸 감소한다는 보도가 자주 나오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팀장님은 이반장에게 보호복을 벗으라고 했다. 이 귀한(?) 꿀벌을 어디서 감히 태워 죽이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손수 나섰다. 먼저 나무에 붙은 벌들 중에서 여왕벌을 찾았다. 나무에 붙은 벌떼는 다행히도 그리 높지 않아서 직접 손이 닿을 수 있는 높이였다. 하지만 그 나무에 달린 벌들은 작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 마리는 족히 될 것 같았다. 저러다 쏘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팀장님은 전혀 겁내지 않고 그렇게 축구공처럼 모여 있는 벌떼를 뒤져가며 여왕벌을 찾았다.
https://youtube.com/shorts/uesKulnkfYE?si=AFe6akrRdpc7RrLh
"여깄네, 여왕벌!"
팀장님은 바닷가에서 연인들이 버린 반지라도 주은 양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그 나무 아래에 있는 시소에 앉아 그 여왕벌을 자신의 손등에 얹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나무에 있던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이 붕붕거리면서 하나둘씩 팀장님의 손등에 붙은 여왕벌을 둘러싸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 벌들은 팀장님의 손등을 감싸더니 손을 감싸고, 손목을 감싸고, 팔꿈치를 감싸고, 급기야는 어깨까지 온통 감싸버렸다. 벌들이 자신의 오른쪽 팔을 온전히 감싸버리자 팀장님은 그제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아직도 나무에서 윙윙거리는 몇 마리 벌들을 슬쩍 한번 보시고는 미련 없다는 듯 벌로 덮인 팔을 슬쩍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이 놀이터를 나와서 산 쪽으로 한 100미터 이상 걸어갔다. 그리고는 적당한 곳을 발견했는지 한그루의 나무 구멍 속에 손등에 얹고 있던 여왕벌을 놓아주고 나머지 벌들도 털어냈다. 하지만 벌들은 마치 조련사의 조련을 받는 호랑이가 그러하듯 아무 반항도 없이 그 나무 구멍으로 고스란히(?) 들어가 버렸다. 팀장님은 자신의 팔에 붙은 나머지 벌들도 쓸어서(?) 모두 나무 구멍에 집어넣고 바지에 붙어있는 몇 마리의 벌들도 하나하나 떼어내어 그 구멍 속으로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태어나서 이런 광경을 처음 보고 있는 우리에게 돌아서며 말하셨다.
"쫄 것 없어, 이반장, 분봉할 때는 이놈들이 아주 얌전하다고, 그러니까 자기네 여왕벌만 안 건드리면 돼!"
우리는 팀장님의 전직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어디선가 양봉업자나, 아니면 벌을 키우는 일을 해봤던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이 귀한 꿀벌을 태워 죽이려고만 했던 우리의 무지함이 너무 부끄러웠다. 벌이라면 태워 죽이는 것이 능사인 줄만 알고 태워 죽이고, 살충제를 뿌려 죽이고, 발로 밟아 죽인 벌들이 얼마였을까? 비록 소방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민원인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하긴 했지만 내가 그렇게 죽인 꿀벌과 말벌이 아마 수천에서 수만 마리는 될 것이었다.
"팀장님!, 이제부터 소방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평소 오버 액션을 잘하던 이반장이 갑자기 팀장님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솔직히 그런 맘이 좀 들긴 했지만 그건 너무 오버인 것 같아서 참고 있었다.
"일어나, 이게 뭣이라고,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야."
팀장님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이반장의 어깨를 추어올리며 일으켜 세웠다.
"동물 구조 나갔을 때 그저 동물을 잡거나 죽여서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생각만 하면 안 돼!, 그것들을 쫓아내거나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주어서 그들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게 되면 그것이 윈윈 하는 길이고 동물과 인간이 서로 잘 살 수 있는 길이야, 그런 길을 찾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 우리 소방관은!"
팀장님은 이반장을 일으키시고 산길을 먼저 터벅터벅 내려가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뒤돌아서 나무 구멍에 있는 벌떼를 돌아보았다. 새로운 터전을 찾은 벌떼들이 웅웅 거리면서 새집을 짓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산길을 내려가는 팀장님의 머리 위로 오월의 태양이 환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