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58)
(사진출처-연합뉴스)
며칠 전 12월 3일은 마침 우리 직장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부산 서면에 있는 음식점과 커피숍에서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집으로 들어오니 마침 우리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저녁을 어디서 시켜 먹었는지 매콤 달콤한 냄새가 가득 집을 채우고 있었다.
"여보 이거 좀 드실래요?"
"아니, 나 지금 배 터질라고 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소파에 앉았다.
"아빠, 내가 9시 전(?)에 오랬지!"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 귀가한 나를 막둥이가 질책(?)했다. 안 그래도 막둥이의 전화를 받고 일찍 온 나는 그 질책이 너무도 귀여워서 막둥이를 살짝 안고 뽀뽀를 해 주었다. 그래~ 이런 질책쯤이야 언제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막둥이를 와이프가 씻기러 가는 걸 보고 나도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아빠, 비상계엄을 선언했대, 윤석열 대통령이..."
첫째가 아이패드에 눈을 박은 채 나에게 말했다.
"뭐라고?, 비상계엄?"
난 첫째가 뭘 잘못 봤지 싶었다. 이 녀석이 비상계엄이 뭔지는 알고 이렇게 말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 TV에서 비상계엄 선언한대, 생방송으로..."
난 얼른 TV를 틀어보았다. 첫째의 말은 사실이었다. 윤대통령이 나와서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자막에는 크게 '비상계엄령 선포'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뭐지?"
난 사십 년 전의 그날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지금은 대학교로 바뀐 우리 집 근처 부산 법원 자리에 장갑차가 서 있던 사십여 년 전 그날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설마?'
내 맘속엔 설마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이 어떤 시댄데, 어떤 세상인데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그래, 있었다. 그럴 수가 충분히 있었다. 상상이 되진 않지만 현실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 흑백사진 속의 기억이 다시 오늘날의 수백만 화소의 초고화질 TV로 다시 재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날의 함성들이, 그날의 절박했던 목소리들이... 서라운드 입체음향으로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빠, 그런데 비상계엄이 뭐야?"
중3인 둘째가 뜬금없이 묻고 들어왔다. 이 녀석은 비상계엄에 대해 아직 사회시간에 안 배운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이번에 수능시험을 친 첫째가 나름 간단명료하게 나 대신 답을 해 주었다.
"그건 지금부터 군인들이 정치를 하고 우리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거야"
"그게 뭔데?"
"쉽게 얘기하면 영장 없이도 사람을 잡아 감옥에 가둘 수 있다구!"
"그럼 재판도 안 해?"
"물론 하지, 군사 재판!"
군사 재판이란 말을 들은 둘째가 '그러면 군사재판은 뭐가 다른 건데?'하고 물었지만 첫째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눈은 TV에 가 있었다. 윤통이 테이블에서 일어서며 인사를 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아, 이제 시작되었구나, 사십여 년간 흑백필름처럼 내 머릿속에 박혀만 있던 그 일이 다시 시작되었구나!'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흑백사진 속의 처참했던 순간들이 다시 흑백 영화의 영사기처럼 내 머릿속에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계엄군의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지는 장면, 군인들의 군홧발에 국회가 짓밟히고 정치인들은 가택연금, 혹은 어두운 지하실 어딘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탄압받는 장면들, 대학가에 백골단이 난입해서 대학생들을 닭장차에 잡아가는 모습들... 우리 세대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커다란 바위처럼 누르고 있었던 그 장면들이 점점 내 머릿속에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국회는?, 국회위원은?"
나는 다시 국회의 소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그 즉시 탄핵은 해제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표의 SNS에는 국민들은 국회로 모여달라는 이재명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TV에서는 국회 입구에서 스크럼을 짜고 군인들을 못 들어오게 하려는 시민들과 들어가려는 군인들의 사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국회 위를 날고 있는 헬기와 거기서 내린 군인들이 유리창을 부수고 국회로 난입하는 장면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지?"
내 머릿속엔 온통 비상을 알리는 붉은 사이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국회가 뚫리면, 그래서 모여 있는 국회의원들을 해산하고 군인들이 국회를 장악한다면 게임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일부터 정말로, 첫째의 말대로 우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빼앗기고 역사의 시계 바퀴를 거꾸로 돌려 다시 80년대로 회귀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었다. 그 어두운 독재의 권력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엄석대'의 시대로 다시 회귀한다니,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역사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 위해 우린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또 얼마나 많은 투쟁을 했던가? 민주라는 두 글자를 위해 그런 어두운 터널에서조차 우리는 서로 어깨를 걸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던 것이 아니었던가?
https://youtu.be/-6gXbgUEc_c?si=EFKCRnsL_GJ6ur0U
교문에서부터 불시 검문과 최루탄으로 얼룩졌던 내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하루도 최루탄 냄새를 맡지 않고는 교문을 들어설 수 없었던 그 시절, 백골단이 학내로 난입하자 짱돌을 던지며 도망치다 군홧발에 차였던 기억도 생생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이 노래를 불렀었다. 그래서 자유와 민주가 주인 되는 세상을 되찾자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겨우 되찾은 우리의 자유와 민주를 어리석은 지도자의 오판으로 한순간에 다시 잃게 되다니...
그런 역사의 아픔을 또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순 없었다. 아니, 물려주면 안 되었다. 나는 TV에서 다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나 둘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모여들고, 계엄군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와서 당직자들과 대치하는 장면, 당직자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소화기를 쏘면서 군인들을 막았다. 그때 국회의장이 의장석에 들어서서 주위를 진정시키고 마침내 표결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190명 출석에 190명 전원 찬성, 그렇게 해서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는 통과되었다.
"휴우, 다행이다!"
나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겨우 3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졸였을까? 그나마 짧은 시간 안에 계엄 해제 요구가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직 계엄이 완전히 해제된 건 아니었다.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해야 일단락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윤통은 뭘 하고 있는지 계엄을 아직 해제하지 않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은?'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국회에서 과반의 표결로 계엄해제를 요구하면 '그 즉시!' 대통령은 계엄을 해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일이면 결과를 알 수 있게 되긴 하겠지만 그 결과가 계엄 해제일지, 아니면 우리 집 문 앞에, 혹은 큰길에 탱크들이 줄줄이 서 있는 것일지 알 수 없었다. 잠을 자지 않고 TV를 보며 밤을 새웠다. 내가 겪은, 그 커다란 바위같이 우릴 짓누르던 시절을 또다시 우리 아이들이 겪게 할 순 없었다. 새벽 4시가 지나자 겨우 윤통이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아~이제야 끝났구나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나는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아침이 되자 햇살이 내 눈을 간지럽혔다. 그렇지, 어제 계엄이 해제됐었지, 악몽에서 깨어난 듯, 나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많은 우리의 일상이 일시에 변할 수도 있었던 하룻밤이었다.
"아빠!"
마침 막둥이가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막둥이 잘 잤어?"
나는 막둥이를 안으며 물어보았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를 안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제 언니들하고 아빠하고 왜 그리 떠들어?, 그리고 TV는 왜 그렇게 시끄럽게 틀어놨어!, 나 잠 못 잤잖아!"
어젯밤 시끄러워 잠을 못 잤다고 투정하는 막둥이를 나는 가만히 안아주었다. 혹시라도 빼앗길 뻔한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이,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간 지난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하룻밤 잠을 못 잔 아이의 투정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막둥아, 이제는 더 이상 네가 잠 못 이루지 않게 아빠가 널 지켜줄게~'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막둥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론 부족하겠지만 우리 국민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언제까지나 이런 평화로운 일상이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리란 생각이 아침햇살처럼 내 머릿속에 따스하게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