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 살아간다는 것(23)
(사진 출처 - 다음카페 '7080')
요즘은 주 3회 신장투석과 함께 주 3회 한의원에 엄니와 동행하고 있다. 지난가을에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방관 생활을 해야 하는 나도 나지만 나이 80이 훌쩍 넘은 엄니 역시 빨리 나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엄니는 고령인 관계로 회복 속도가 느리고, 나 역시 좀 나으려 하면 소방서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치료했던 상태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9월 말에 당한 사고로 거의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엄니와 한의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거리를 보니 '영탁'이란 가수의 콘서트를 한다는 벽보가 보였다. 엄니가 좋아하는 임영웅과 같이 몇 년 전부터 큰 인기를 끄는 가수다. 그걸 보니 몇 달 동안 한의원에 다니면서 고생한 엄니와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엄니, 영탁이 이번에 콘서트 하네, 한번 가볼텨유?"
하고 슬쩍 떠보았다.
"아니, 뭘 그런 걸 보러 간다냐, 요즘 정신도 없을 낀데..."
엄니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셨지만 싫지는 않으신지 입가에 웃음이 흐르는 것이 백밀러로 보였다.
"엄니, 그러지 말고 누나랑 세 명이서 저거나 보러 갑시다, 내년 1월달에 한다니 시간은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니는
"그럼 그렇게 할까?"
하며 이제야 환한 웃음을 보이셨다. 그래, 엄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나훈아나 임영웅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엄니와 함께 '콘서트'라는 걸 한번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의원에 다녀와서 울산에 사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이번에 영탁이 공연한다는데 엄니하고 한번 가보는 게 어때?"
누나는 좋다고 했다. 그런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훈아 공연에 가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 한다는데, 표는 다 팔렸대. 그런데 당근 같은 데서 찾아보면 사정 때문에 못 가는 사람이 내놓는 게 종종 있대, 그러니 부산에 사는 네가 한 번씩 보다가 뜨는 게 있으면 사 볼래?"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해서 내가 오랜만에 당근에 들어가서 '나훈아 부산'이란 검색어로 알림을 받기로 했다.
'당~근!'
첫 번째 알림이 왔다. 토요일 표였는데 너무 뒷자리였다. 거기다 토요일에 가려면 내 근무일이라 휴가를 하루 내야 했다. 거기다 2자리밖에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결국 패스해야 했다.
'당~근!'
두 번째는 다행히(?) 3자리였고 일요일 표였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 11시쯤에 뜬 알림이었다.
'내일 거래하러 가면 안 될까요?'
나는 표를 팔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러려면 선입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네?'
내일 오겠다고 하고 노쇼를 할 수도 있어 10만 원 정도 선입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믿고 무작정 선입금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건 좀 부담스럽다고 했더니 지금 거래하러 오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사람과 거래하라고 하고 그것도 패스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알림이 떴지만 한자리나 두 자리뿐이었다. 거기다 토요일이나 무대에서 너무 먼 것들이었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모두 패스 했다. 그리고 다음날 엄니와 함께 한의원에 가는 길이었다.
"아범아, 니 누나에게 들어보니 나훈아 콘서트 가느라고 요즘 표를 구하고 있다며?"
엄니는 백밀러로 내 눈을 보며 물었다.
"네, 이왕이면 영탁이보다는 나훈아가 낫다고 누나가 그러더라구요."
"아서라, 말어라, 이런 시국(?)에 무슨 나훈아 콘서트니, 거기다 너희 첫째는 아직 발표도 나지 않았잖니."
엄니의 말은 부드럽고도 단호했다.
"올해는 좀 넘기고 내년 초에 좀 조용해지고 첫째도 마무리가 좀 지어지면 그때 가던지..."
엄니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창밖으로 돌리셨다. 엄니의 부드러운 고집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나는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가족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의 것을 가장 뒤로 미루는 엄니의 고집을 어릴 때부터 나는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었다. 엄니는 그렇게 자신의 80 평생을 살아오신 대로, 첫째의 수능 결과가 나오고 마무리가 지어져서 앞으로의 방향이 정해져야, 콘서트를 보러 가도 자신의 마음이 편할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그렇게 엄니를 모시고 보는 우리 남매의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가 될지도 몰랐던 나훈아의 2024년 콘서트는 불발되고 말았다. 엄니를 모시고 엄니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구경시켜 드리려던 우리 남매의 소박한 소망은 올해도 물 건너가 버렸다. 언제쯤 엄니는 가족들의 일을 잊고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한번 마음껏 누리실 수 있을까?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그런 작고 소박한 것도 해 드릴 수 없는 못난 아들의 애끓는 마음을 나훈아의 '홍시'라는 곡으로 오늘 밤 달래 보고 싶다.
https://youtu.be/qHO_gvdq7vs?si=dCoAEkJFZPs4RA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