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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un 09. 2022

영원한 오빠, 송해오빠를 추억하며...

아침 동산에서(23)

(사진-2014년 KBS 연예대상 캡쳐)


   오늘, 송해 선생님, 아니 우리들의 송해오빠가 향년 95세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제 전국 노래자랑을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tv에서 그를 처음 본 것은 서영춘이라는 코미디언과 함께 나온 만담류 코메디에서였다. mbc에서 방송하던 제목은 '웃으면 복이 와요'라든가?, 그랬다.- 나 엄청 옛날 사람~^^;;- 그때는 내가 대여섯, 일곱 살쯤이던 70년대였는데 그때 난 서영춘을 최고의 코메디언 -그때는 개그맨이란 말보다 코메디언이란 말을 많이 썼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송해는 서영춘을 받쳐주는? 조연 정도로만 알았던 것 같다.


https://youtu.be/P61W1Er_CnQ


   그랬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80년대에 전국 노래자랑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처음 그 방송을 본 느낌은 좀 촌스럽다는 것이었다. 주로 시골이나 농촌에 가서 거기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노래자랑이 뭐 그리 세련될 수 있었겠냐만 어린 마음에는 시골 아저씨, 아줌마가 몸빼 -이 말도 정말 옛스럽네~^^;;- 입고 나오는 촌스러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서 몇 분을 넘기지 않고 채널을 돌렸던 것 같다.


   다른 채널에선 세련된 가수들이 멋진 춤과 노래로 무대를 꾸미는 프로가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가요톱텐, 토토즐, 열린 음악회... 그래서, 어릴 때 어쩌다 대중목욕탕 평상 위에서 전국 노래자랑을 틀어놓고 입을 헤벌레 벌리고 웃고 있는 아저씨나 할아버지를 보면 '뭐가 그리 재밌으시나?'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많은 별들이 떴다가 지기를 반복했던 가요 톱 10 - 다음까페 '락 싸커' 갈무리)


   그랬던 내가 본격적으로 전국 노래자랑을 정기적으로 시청하게 된 것은 소방서에 들어오고 난 이후였던 것 같다. 소방서에서 일하시는 식당 이모님들은 주로 일요일에 안 나오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일요일 점심은 으레 중국집이나 라면 등으로 한 끼 얼른 때우고(?) 막내였던 나는 먹은 그릇 몇 개를 대충 설거지하고 사무실로 내려가면 사무실에서 고참(?)님들은 으레 전국 노래자랑을 틀어놓고 삼삼오오 쇼파에 모여 앉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이거 뭐지?'


   '다른 재밌는 프로도 많은데 왜 이걸?"


   하는 생각도 가졌었다. 하지만 막내인 내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기엔 그 프로에 대한 고참님들의 몰입도는 상당한 레벨이었다. 한 고참은 대놓고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자기는 다른 프로보다도 가요 무대하고 전국 노래자랑이 제일 재밌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재밌다니... 하지만 하루 이틀 그런 일요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어느새 그런 분위기에 묻어가게 되고 젖게 되고 기다리게 되는 것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세련되고 화려한 것들만이 아닌, 수더분하고 촌스러운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내는, 우리 어머니 같고 누이 같은 사람들의 세상이란 것을 그 고참은, 그리고 송해 오빠는 벌써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막내를 벗어나고 나서 더 이상 설거지를 안 해도 되는 때가 와도 나 역시 으레 밥을 먹고 나면 사무실로 내려가 그 프로를 트는 것이 불문율이 된  것이었다.


(전국 노래자랑 인천 남구 편 - 다음 까페 SSN 갈무리)


   일요일 낮 12시 10분, 짜장면이나 라면으로 얼른 한 끼 때우고 내려와 tv를 틀면 으레 울려 나오는 귀에 익은 경쾌한 실로폰 소리, 딩동댕동~ 그리고 키 작은 일요일의 남자가 나와 외친다.


   "전구욱~!"


   그러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던 관중들은 거기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한 목소리로


   "노래자랑!"


   하고 외친다. 그러면 따라 나오는 인트로 음악, 일요일 오후의 나른함을 가장 잘 느끼게 해 주는 음악이다.


https://youtu.be/8ZL23YsQ5cE

     

   이제는 그 경쾌한 실로폰 소리가 나오고 딴딴딴 딴따 단따~ 따라라 딴딴딴딴 딴~따~ 하는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와도 뭔가 아쉬울 것 같다. 누가 차기 사회자가 돼도 그럴 것 같다. 마치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듯 목이 메일 지도 모른다.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에 가서 욕을 얻어먹으며 국밥을 먹어야 제맛인데 그 욕이 없어서 제맛이 안나는 국밥처럼 이제 전국 노래자랑을 보면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송해 오빠는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많은 걸 가지고 가셨다. 그렇게 일요일 오후의 나른함을 가지고 가신 것이다. 그리고 23년 동안의 내 소방서 생활의 일요일 오후를 가져가신 걸 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전국 노래자랑의 송해 오빠를 '라때'에서나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해 오빠는 한 세대의 추억을 가지고 가신 것이다.


   누군가는 95년 동안 노래와 함께 즐겁게 사셨으니 더 바랄 것 없는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추억할 많은 것을 만들어놓고 가셨으니 남은 우리로 봐서는 더욱 그분이 아쉽고도 그립다. 부디 하늘나라에 가셔서도 이 세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친근한 노래와 함께 정겨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일요일의 남자 '송해 오빠'로 남아주시길 그분의 소탈하면서도 자상한 미소를 보며 기원해 본다.


(영원한 우리들의 송해 오빠 - 뉴스 1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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