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동산에서(22)
(사진출처 픽사 베이)
며칠 전, 가상화폐,-사실 아직도 이걸 가상화폐로 불러야 하나, 암호화폐로 불러야 하나, 아님 다 싸잡아서? 비트코인으로(일반인들은 이걸로 부르면 제일 잘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다.~) 불러야 하나 헷갈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김치 코인?이라는 한국산 코인인 루나와 테라가 급락했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비롯한 대중매체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개당 15만 원에 육박할 정도였던 루나가 1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폭락한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그걸로 몇억, 몇십억의 손해를 본 사람들이 인증샷을 올리고, 다른 한편으론 며칠 뒤면 상장 폐지될 그 코인들을 사서 시세차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나도 비트코인이나 그런 코인들에 대해 많은 투자를(라고 쓰고 투기라고 읽어야 하나?~^^;;) 하지는 않지만 소싯적? 에 살짝 발을 담궈본 경험은 있다. 비트코인이 나오고 나서 시세가 10만원 정도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처음 누군가가 그것 1만 개로 피자 두 판과 바꿔먹었다는 뉴스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 같은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이런 대화가 오갔다.
뭐? 그게 십만 원이나 한다구?
그래 말이야, 그게 십만 원이나 하다니, 개가 웃을 일이지, 그거 이제 폭락할 거야
근데 그거 어떻게 사는지 알어?
아니, 몰라, 그거 컴퓨터로 채굴이라나, 뭐라나 그런 걸 해야 한다던데?
뭐? 채굴이라고? 그럼 컴퓨터 안에 들어가서 광산에서처럼 곡괭이질이라도 해야 하나?
그건 나도 모르지, 근데 그런 게 있대.
여기서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누구도 '채굴'이 뭔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걸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약간 우리와는 먼 세계, 컴퓨터 전문가들이 하는 사기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걸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천정부지로 값이 뛰기 시작하더니 백만 원, 천만 원, 오천만 원이 되었다. 동료들 중에는 그걸 따라가 보겠다고 빚을 내어 산 사람들도 있었고 날마다 얼마 먹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들을 따라 살짝? 발을 담가본 적이 있는데 그게 소방관하고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4시간 시시각각 변하는 그것들의 등락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데 소방관의 직업 특성상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시에 걸리는 화재 출동을 나가서 몇시간씩 불을 끄고 돌아오면 시뻘겋게 올라가기만 할 줄 알았던 시세 그래프는 파랗게 질려 아래로, 아래로 내리꽂고만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조금 있었던 내 종잣돈은 다 날아가고 내 손에는 아직 흘러내리지 않은 모래 몇 톨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성경에 있는 이런 말씀이 생각났다.
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이 강조되는 성경에서 이렇게 '사랑'이란 말이 부정적으로 쓰인 경우는 이게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돈에 대한 사랑이 어떻길래 이렇게 처참한 최후를 가져오는 것일까? 돈이 많으면 하기 싫은 일도 안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하고, 가고 싶은 곳에도 얼마든지 찾아가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러자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저렇게 눈이 벌건 게 아닌가? 하지만 성경에서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하기야 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욕심을 내어 이것저것 해 보다가 그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도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면 그 말도 맞다. 건실한 직장에 평온한 가정을 가진 사람도 돈 욕심에 이끌려 파산하게 되면 직장도 사라지고 가정도 해체되어 스스로 노숙자가 되어 거리를 떠돌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화폐전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한한 돈을 두고 벌이는 개인들의 무한한 경쟁은 이미 '전쟁'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과는 '전쟁'수준의 인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 그 '지향'이란 단어엔 돈의 유혹에 대한 나 자신의 인내를 담고 있다. 쓸데없는 건 버리고 쓸데없이 돈 쓸 일도 버린다. 많이 벌면 좋겠지만 많이 벌지 못한다면 적게 쓰면 될 일이다. 하기야 세상엔 그다지 돈 쓸 일이 없긴 하다. -이런저런 관점만 바꾼다면 멀리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동네 뒷산에 오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최고급 셰프가 해주는 요리를 먹지 않더러도 아내가 끓여주는 한그릇의 라면이 근사한 요리가 되기도 한다. 명품차나 백이 아니더라도 버스를 타고 다니며 종이가방을 들어도 행복할 때가 있다.- 약간의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 저런 힘든 전쟁을 안 해도 되고 나중에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이렇게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루나와 테라의 폭락을 보니 돈이란 게 바닷가에서 모래를 한 줌 퍼올리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마는 모래알과 같은 것임을 알겠다. 그 모래알들은 꽉 움켜쥐려고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나중엔 몇 알 남아있지 않게 된다. 이런 모래알들을 계속 움켜쥐려고 집착할 게 아니라, 그 모래사장에서 맘껏 뛰노는 행복을 만끽하는 게 낫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남아있었다던 일본의 군인들처럼 나도 그 화폐전쟁이 어찌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무인도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뛰놀고 싶다. 어차피 해가 지면 다시 모래사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의 시간들을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백사장을 거닐며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