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작 "어제보다 더 나답게 일하고 싶다"를 지금 다시 쓴다면
한국은 다르게 살기 어려운 사회이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설득하는 것조차도 경험상 굉장히 어려운 사회이다.
시장에서의 희소성이 더 높은 교환가치를 만들어내고, 몸값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논리로 설득해도, 남들과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주류에서 벗어나면 기회는 얻을지 몰라도 주변사람들의 잔소리에 시달릴 걱정이 너무 큰 것 같다.
그래서 많은 한국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질문도 잘 안 하고(기자도), 의사표현이나 요청도 잘 안 한다("추워요, 에어컨 좀 꺼주세요"). 본인이 필요한 게 있어도 손해를 볼지언정 '쟤 뭐야?'라는 시선을 받을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
조직의 리더들도 겉으로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할지 몰라도, 선택권이 있다면 이왕이면 나와 비슷한 사람을 팀원으로 두고 싶어 한다.
그동안 내가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처럼, 팀이 성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나와 비슷한 구성원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자꾸 mini-me를 찾고, 만든다.
꼭 리더가 아니라도 다름을 경계하는 것은 동물적인 본능이다. 우리와 생김새, 말투, 습관, 문화, 가치관, 방식, 기호 등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적인지 친구인지 빨리 구분하게 도와주는 휴리스틱(축적된 경험에서 우러난 발견적 해결)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본능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름을 포용하지 않는 조직은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병충해로 순식간에 멸종될 위험성을 가진 유일종 캐번디시 바나나와 같은 처지이다.
한창 핫하던 DEI(혹은 D&I)가 이제 지나는 유행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난 극단적인 형태에서 상식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중이고(예를 들면 디즈니?) 다양성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리더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한다는 것은 싫은데 억지로,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고 ‘정도’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더라도, 그 구성원이 우리를 살려줄 소중한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다양성을 대하는 자세라고 믿는다.
마치 자동차 사방에 붙어있는 센서와 카메라처럼 각자 다른 방향을 봐주기 때문에 조직 전체가 위험을 피하고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물론 그 방향으로 아무런 위험이나 기회가 감지되지 않을 때에는 쓸모없는 센서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매일 발생하는 것이 일터이고, 시장이고, 또 인생이지 않나.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기준을 우수한 수준으로 충족시키는 역량이 그 사람의 강점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우리와는 다른 그의 특성이 그의 강점이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사용법과 기대효과를 갖고 있는 말을 다루는 체스 플레이어처럼, 그 다름을 강점으로 이끌어내는 전략과 전술을 세우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최근 듄 Dune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영화음악의 대가 한스 짐머는 다름을 커리어 내내 자신의 다름을 강점으로 활용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부분의 미래/우주배경의 SF영화가 유럽식 오케스트라 음악을 사용할 때, 그는 새로운 악기와 사운드를 사용해 익숙하지 않은 느낌을 창조했다. 과거 인터스텔라에서는 프랑켄슈타인에나 나올법한 악기인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한 메인 테마를 작곡했다.
본인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연주자나 편곡자도 처음부터 유명한 사람들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 대중적 성공이나 인지도가 없는 실험가들을 직접 섭외하러 다닌다.
그와 자주 일하는 크리토퍼 놀란이나 드니 뵐뇌브 감독들과는 아예 새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만들 때, 기존 작업이나 스타일은 배제하고 백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루틴화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다른 아이들은 레고를 가지고 놀 때, 한스 짐머는 피아노를 ‘고문하며’ 놀았다. 그래서 지금처럼 새로운 사운드, 스타일, 악기 등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은 전혀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매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침에 일어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존/주류/업계/우리와는 다른 면모를 가진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용해 준 리더들이(선배 작곡가, 감독, 제작자) 있었기에 한스 짐머가 지금의 거장이 되고, 그가 참여한 영화는 명작의 반열에 오르고, 스튜디오들도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여러분 조직의 리더는 한스 짐머 같은 ‘많이 다른’ 새내기가 팀에 들어왔을 때 구박하거나, 억지로 우리에 끼워 맞추거나, 쫓아내지 않고 포용할 안목을 갖추고 있는가?
2024년 3월 24일
박앤디
Vanity Fair 한스 짐머 인터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Gs_NT4iL2c
*cover image source: Los Angeles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