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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a Jun 21. 2022

[언내추럴: Unnatural, 2018]



"unnatural death" : 자연사가 아닌 죽음으로, 규명되지 않은 사인을 가진 죽음 

    


어릴 때부터 '큰 인물이 되어라' 는 세뇌를 받고 자란 우린, 어느 순간 그들이 말했던 "큰 인물" 이라는 것은 사실 허상이란 걸 깨닫는다. 그리곤 녹록치 않은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렇게 또다른 어른이 된다. 


그렇게 순탄치 않은 현실에 겨우 하루하루를 보내던 우리는 어느 순간, 

"왜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에 다다른다.  











삶과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삶은 결국 죽음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삶을 향한 의지를 얻는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죽고 싶어" , "입맛 없어", "죽을만큼 짜증나" 같은 말들을 하지만, 미코토는 그런 말을 한번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가장 힘들 때, 밥을 먹는다. 누군가 보면 '참 맛없게도 먹는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꾸역꾸역 입 안에 음식을 집어넣는다. 



"그럴 기분이 아니니까 먹어야 해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드라마는 실은, 

"살아야 해" 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죽음 뒤에 남겨진 자들은 "내가 왜 살아야 해?"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죽음의 생존자이자 희생자로 남을 뻔했던 미코토와 나카토는 "그래도 살아" 라고 말한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한 소녀는 죽기 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매순간 꿈꿔왔던 백야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꿈을 지켜본 다른 소녀가 그녀의 꿈을 이어받는다. 

그리곤 꼭 백야를 보러 가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까, 

삶의 의미란 게 과연 존재할까 


<언내추럴>은 이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러나 해답을 던져주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자체로 해답이다. 


그 해답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꿈도 좋고, 하루의 사소한 유희거리도 좋다.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것도 괜찮다. 

어떤 이유든 상관없다. 심지어는 의미가 없어도 괜찮다.


다만 삶이란 건 온전히 나의 것이고, 그 시작과 끝을 타인에게 뺏기지 않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다. 


삶과 죽음은 연결돼 있고, 죽음이 존재함으로써 삶은 완성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연명해간다. 

그 의지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삶에 대한 의지는 그 어떤 가치보다 숭고하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삶을 선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위로이자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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